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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Sep 04. 2015

푸른 수염

사랑의 황홀경


작년도 어김없이 내 생일이 다가오자 무엇이 갖고 싶으냐고 물어오던 친구에게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 하였다. 네가 골라주는 책으로 한번 읽어보겠다고.

사실  마음속으론 신간인 '푸른 수염'이면 좋겠다 싶었지만 또 한편으론 친구의 선택이 궁금했다.

친구가 직접 골라 사주는 책이라면 꼭 내가 원한 게 아니더라도 좋을 것 같기도 했고.


결과는 우리의 '텔레파시 통통!'이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푸른 수염이라는 괴기스러운 동화는 내 기억 한 켠에서 잊히지 않고 분명히 자리 잡고 있다. 생각해보면 동화 중에 충격적인 얘기들이 많은 것 같다. 이게 과연 아이들 정서발달에 도움이 될까 싶은?

아무튼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소설로 어떻게 색다르게 해석하고 풀어냈을까 기대를 잔뜩 품고 읽어가기 시작했다.


굳이 이 곳에다 그 줄거리를 구구절절 쓰지는 말기로 하자.


한 권의 책을 읽고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선 '사랑의 황홀경은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을 볼 때와 같다'는 비유가 내겐 제일 와 닿았다. 아마 이 문장이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으로 생각했던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황홀경은 망아지경이라는 단어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망아지경이란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지를 말하는데, 나는 가끔 아름다운 색채를 볼 때 망아지경의 상태가 되곤 한다.

오늘 낮에만 해도 학교에서 본 마치 한 폭의 유화 같았던 구름과 하늘의 조화, 그리고 보라색, 분홍색의 배롱나무는 나로 하여금 푸른 수염의 그 비유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리고 22살에 다녀온 유럽여행에서의 그 감정도 잊을 수가 없다. 바티칸 박물관 어느 복도 천장에서 정말 내가 딱 좋아하는 흰색과 파란색을 봤을 때의 그 가슴 뛰는 느낌. 바티칸 박물관에는 참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많았는데도 내가 오롯이 기억하는 것은 바로 그 천장이다. 당시에는 그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너무 좋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무채색과 같은 어떤 것으로 바뀌어버렸지만, 햇살 아래 서서 나를 기다리던 그 사람의 초록빛 셔츠를 잊을 수가 없다. 그 초록을 찬양하면서 썼던 짧은 글만큼은 지금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다.



너는 초록 같은 사람이야

초록에 가둬두고 싶진 않지만 

네가 너무 반짝거리면서 푸른 빛을 내는 통에 

내 마음이 부셔서


부서지는 여름 날에

너를 만난 게 너무 좋아서

꼭 안아줄 수도 없는 나에게


너는 초록으로 다가와

또 어떤 빛을 내며 나를 어지럽게 만들까

궁금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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