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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Jul 15. 2016

오늘은 새삼스레 여름이 너무 좋아

(혼잣말 주의)

 어제 밤, 제주도 여행이 며칠 남지 않아 이제 준비는 다 된 건가-하고 생각해보다 은행에 다녀와야 하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행 계획을 짜며 찾다 보니 카드를 안 받는 곳이 꽤 있길래, 그냥 맘 편히 현금으로 다 가져가자! 했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은행에 가는 김에 내가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않는 서브웨이에도 들렀다 와야지, 아 그런데 아침은 이미 오트밀을 만들어뒀는데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쨍쨍한 낮에 나가야지 뭐.

 그래서 폭염이다, 무더위다 말 많은 요즘 날씨에 겁 없이 나갔다 왔다. 그냥 은행 한번 가는 거 가지고 뭘 이렇게 주절대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 요즘 엄청 집순이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고요. 그래서 나갈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설레는지 몰라.

 예뻐서 사놓곤 막상 몇 번 못 입어 본 연보라색 크롭 반팔티에, 하얀색 핫팬츠를 오래간만에 입어 봤는데 이렇게 예쁜 조합이 집에서 썩어가고 있었다니- 왠지 미안했다. 이제 앞머리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자라 버린 머리칼은 핀으로 샥 올려 이마도 시원하게 드러내 주고 바깥 구경을 나섰다.

 바깥은 내 기대보다 훨씬- 화창했다. 5분 정도 걸으니 땀이 삐질삐질 나서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인상을 찌푸리곤 했지만, 그래도 내 시야에 들어오는 새파란 하늘과 뽀얀 구름이 너무 예뻐서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다만 내 신경을 조금 거슬리게 했던 건, 짧은 티셔츠 아래로 살짝 드러난 내 귀여운 배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늙은 아저씨들의 눈짓이었다. 그 아저씨들이 나고 자랄 땐 이런 옷을 입은 여자들이 없었어서 신기해하는 거 이해는 되지만, 다른 사람을 그렇게 동물원에 갇힌 동물 보듯이 보는 건 매너가 아니라는 것 좀 인지하셨으면 좋겠다. 

 아, 그러거나 말거나 그래도 난 간만의 외출이 너무 즐거웠고, 오늘 입은 옷의 조합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티셔츠가 짧은데다 벙벙한 핏이라 바람이 불 때마다 펄럭 펄럭 거리며 내 속으로 바람이 슝슝 들어왔다. 공기가 이미 뜨거워져 그리 시원한 바람은 아니었지만, 내 속으로 들어왔다 나가는 바람의 느낌이 좋았다. 제주의 하늘도 꼭 이랬으면 좋겠다, 하고 상상하며 집으로 걸어오는 기분은 뭐라고 표현해야 알맞을까 모르겠다. 그냥, 오늘은 새삼스레 여름이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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