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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Sep 29. 2017

내 구명보트는 언제쯤 만들어질까

 아침을 먹고 다시 공부 시작하기 전에 잠깐, 트위터 좀 봐야지 했다가 거기서 어떤 예쁜 남자를 보게 됐고, 애써 죽여왔던 감성들이 간만에 확 올라와서 브런치를 켰다. 사적인 얘기긴 하지만 난 그 사람이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사진작가이신 것 같은데, 아마도, 그 분이 올리시는 글들이 늘 깔끔하게 감성적인 느낌이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을 과하게 자랑하지도 않고, 남을 웃기려고 남을 까는 타입도 아닌 것 같고, 소소한 일상 속의 작은 감정들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이랄까? 그 점이 참 좋았다. 실제로 아는 사람은 아니니 단언할 순 없지만, 그 사람이 쓰는 글을 보면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느낌으로 알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인터넷에서 본 남자한테 반했다는 얘기나 하려고 쓰는 거냐 하면 뭐, 절반은 그럴 수도 있고. 근데 나머지 절반은 그 사람이 부러워서, 인 것 같다. 살면서 공부를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공시생이 되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나 같은 사람한테는 사람과 감성이 쥐약이구나. 사람이 너무 좋아서 사람을 한번 만나기 시작하면 계속 만나고 싶고, 오늘처럼 감성 스위치가 한번 켜지면 끄기가 힘들다. 한 번씩 바깥바람도 쐬고, 사람들 만나서 스트레스도 풀고, 또 열심히 하면 되지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는 거다. 글 쓰고 싶으면 한 번씩 쓰고 또 열심히 하면 되지 싶은데, 마음이 한번 붕 떠버리면 억지로 억지로 가라앉혀야 해서 그 과정이 불편하다. 그렇다 보니 웬만하면 이런 감정이 확 올라와버리지 않게끔 늘 차분하게, 조금은 가라앉아있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그 남자가 부러웠다. 자신에게 오는 그 감정들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그 여유가 너무 부러웠다. 더 정확하게는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본격적으로 글을 쓰지는 않더라도 짧게 짧게 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쓸 수 있는 말이 없다. 들어오는 게 없으니 내보낼 것도 없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건데, 그 사실이 조금 슬픈 아침이다. 이거랑 똑같은 글을 분명 몇 달 전에도 썼었는데, 아 징징이 앵무새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공부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지만 가끔 찾아오는 이런 감정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는 날들이 많고, 글자들 속에 파묻혀 나는 언제쯤이면 여길 탈출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구명보트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존신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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