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손에 들어본 게 꽤 오래 됐는데, 얼마 전에 갔던 기장 이터널저니에서 이 시집을 펼쳐 한두 페이지 읽어 보고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바로 사버렸다. 시집 표지부터가 스산한 느낌을 강하게 주는데, 임솔아 시인이 쓰는 문장들의 느낌과 정말 잘 어울리는 색감을 고른 것 같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시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어둡고 차가운 감성은 아니다. 참 나 같다고 느껴졌다. 함부로 위로하려 들지 않고, 억지로 미화하려 하지 않는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운명을 그냥 있는 그대로 쓴다. 시인이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시각이 아닐까 싶다. 시인이 인터뷰에서 자기 시는 너무 우중충하고 무겁고 어둠의 무리 같다고 말한 걸 봤는데,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세상은 참 모순적이고 아프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이 느껴진달까.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시집이다. 임솔아 시인의 다음 시집도 기대 된다.
- 시집 맨 첫 장 시인의 말
언니가 열쇠라는 것만 알았지.
방 열쇠를 나눠 가지면 된다는 걸 나는 몰랐어.
내 방에선 끔찍한 다툼들이 얽혀
겨우겨우 박자를 만들어내.
언니는 말했지.
이런 세계는 풀 수 없는 암호 같고,
그런 건 낙서만큼의 가치도 없다고.
그건 얼마나 옳은 생각인지.
언니와 나 사이에 사는 사람들과
열쇠를 나누어 가지면 좋을 텐데.
- 아홉 살
도시를 만드는
게임을 하고는 했다. 나무를 심고 호수를 만들고
빌딩을 세우고 도로를
확장했다. 나의 시민들은
성실했다. 지루해지면
아이 하나를 집어 호수에 빠뜨렸다. 살려주세요
외치는
아이가 얼마나 버티는지
구경했다.
(중략)
그러나 모든 것을
태우지는 않았다.
나의 시민들이 다시 도시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
만 나는 도시를 망가뜨렸다.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더 오래 게임
을 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나의
시민들에게 미안하지
않다. 아무래도
미안하지가 않다.
약간의 사고와 불행은 나의 시민들을 더 성실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