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아이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나요?
"환불해주세요."
"저... 손님. 그게..."
이 동네에서 유명한 환불 원정대가 또 왔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세네 명이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특히 인조 속눈썹을 진하게 붙이고 다니기 때문에 '속눈썹 모임'이라고 불린다. 이 여자들은 우르르 와서 물건을 산 뒤 트집을 잡아 환불해달라고 소리 지르곤 한다. 지난달에도 환불처리를 했는데 이번에도 환불을 요구한다. 진상 손님들에게는 딱 잡아서 정색하고 말해야 한다. 언제까지 질질 끌려갈 것인가. 숨을 한번 들이쉬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손님. 물건이 오염됐네요. 환불은 안됩.."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투폭격기가 지나가는 것 마냥 온갖 비난이 쏟아진다.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한다, 인터넷에 올린다 하면서 옥죄어온다. 그래.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네. 환불해드릴게요..."
'속눈썹 모임' 여자들이 나갔다. 카운터에 놓인 사탕 하나를 까먹고 부들부들 거리는 손을 내려놓는다. 사탕을 이리저리 굴린다. 오늘은 일찍 문을 닫고 집에 가아겠다.
집에 도착하니 지영이가 혼자 이불속에 엎드려있다. 무슨 일 있냐고 묻는 순간 지영이가 펑펑 눈물을 흘린다. 놀란 마음으로 왜 우냐고 묻는데 눈물 콧물 코맹맹이 소리로 웅얼거리는 바람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엄마도 그냥 울고 싶다.
"엄마, 지수가 채윤이랑만 놀고 나랑은 안 놀아줘."
" 지수랑 채윤이 말고 다른 애들이랑 놀면 되잖아."
"다른 애들 누구... 없어. 나 혼자야. 내가 계속 미안하다고 하는데도 나랑은 안 논대."
"너만 왜 만날 미안하다고 매달려? 이제 걔네랑 놀지마. 됐지?"
"엄만 아무것도 몰라. 나 학교 가기 싫어."
지영이는 홱 토라져서 밤새 엉엉거리고 울고 있다. 지영이가 모든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서 친구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 문득 오늘 매장에 왔다간 '속눈썹 모임' 여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엄마도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어른들은 인생에서 '먹고사는 문제'. 즉 커리어와 재산을 가장 중요하기 여기고 친구는 그다음의 문제로 생각한다. 어쩌면 '친구 만나기'는 그림 그리기, 뜨개질하기와 같은 여러 가지 취미 중의 하나로 묶을 수 있겠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친구관계'는 '먹고사는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이슈이다. 어른들은 가끔 아이들에게 '친구관계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라.'라고 조언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내일 직장에 잘릴지 말지 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먹어.'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니까 실제적으로 '친구관계는 신경 쓰지 마라.'는 조언은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꼭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의 학교 친구관계는 어른들의 친구관계와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첫째, 무리 안에서 친구 관계가 틀어졌을 때 다른 친구를 만드는 게 어렵다. 때때로 어떤 사건이나 오해로 인해 친구관계가 틀어질 때가 있다. 이러한 작은 해프닝은 대부분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지만 성격차이로 인해 친구관계가 틀어지게 되면 연애 초반에 불같이 사랑했던 연인이 헤어진 뒤 재회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 관계를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은 아이들이 원래 친했던 친구를 떠나 다른 친구를 사귀는 것을 무척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서로 가면을 쓰고 상대방을 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표면적인 관계를 거부하고 '마음을 나누는 깊은 친구'를 원한다. 그래서 끼리끼리 똘똘 뭉쳐서 다른 무리를 배척하는 모습도 보인다.
간단히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에 비유해 보자. 미운 오리 새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린 오리새 끼는 다른 오리들과 어울리지만 차차 달라지는 외모로 인해 따돌림을 당하고 집을 떠난다. 어느 마음씨 좋은 할머니의 집에서 지내게 되지만 그곳에 있던 고양이와 닭의 괴롭힘에 못 이겨 결국 또 도망쳐 나온다. 결국 자신이 오리가 아닌 백조라는 것을 깨닫고 백조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미운 오리, 즉 무리에서 배척당한 아이는 고양이와 닭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것처럼 다른 무리에 잘 섞이지 못한다. 자신이 백조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에게 잘 맞는 무리를 찾아 들어간다면 성공적이겠지만 자신의 성향을 잘 모르거나 백조 무리를 찾지 못하는 이상 아이는 자신을 배척했던 친구들을 주변을 맴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똑똑한 엄마는 '걔네들은 잊고 다른 친구를 사귀어라'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우선 우리 아이의 성향과 무리 친구들의 성향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고, 우리 아이의 성향과 잘 맞는 친구가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을 코칭한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장에 소개한다.
둘째, 친구 간에도 서열이 있다. 학창 시절 친구를 떠올리면 아름답고 순수했던 기억들만 떠오른다. 팍팍한 현실과 다르게 그때 친구들은 조건 없이 우정을 나눴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기억의 상당 부분 미화되었고 잊힌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교에도 친구사이 서열은 존재한다. 정확히 직장 직급 순이나 경력 순처럼 서열을 명확히 할 순 없지만 무리 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무리를 이끄는 아이를 위해 다른 아이들이 분위기를 맞춰주는 것 같다. 친구 관계란 자고로 평등한 기브 앤 테이크 관계이어야 하는데 직장 상사를 대하듯 친구에게 맞춰주는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순수한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완벽히 평등한 기브 앤 테이크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두자. 똑똑한 엄마는 이러한 서열관계를 알고 우리 아이에게 미치는 득과 실을 명확하게 파악한 후 개입한다.
셋째, 친구에 대한 감정표현에 솔직하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친구와 싫어하는 친구에 대한 감정표현이 솔직하고 명확하다. 학교에서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기 어려운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쉬는 시간에 다른 무리의 친구와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싫어하는 친구 앞에서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기도 하고 한다. 한마디로 아이들은 아직 미숙하다. 누구나 부모로서 우리 아이가 모든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겠지만 그것은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미션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니까 아이가 좁은 친구관계에 멈춰있어도, 모든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아니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의 마음이 편안한가. 우리 아이 때문에 상처 받는 친구는 없는가. 정도만 체크해도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