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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Jan 02. 2023

자식자랑을 참아야 하는 두 가지 이유

곧 명절이 다가온다. 

명절이 되면 자녀의 입학결과를 두고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앉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한껏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부모가 생긴다. 

"우리 애는 S대에 들어갔어요. 호호."

"우리 애는 스스로 밤새 공부하더니 과학고에 들어갔어요. "

"그 집 애는 어때요?"


자식 자랑은 한도 끝도 없다. 한글을 배우는 유아 때부터 부모들의 자랑 경쟁이 시작된다. 남의 자랑만 듣고 있자 하니 나도 뭔가 우리 아이에 대해 자랑해야 할 것만 같다. 기죽어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애는 벌써부터 영어 원서를 읽어요. 호호."

"우리 애는 학급 반장이에요."

"우리 애는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아왔어요."

"우리 애는 벌써 태권도 검은 띠에요."


그러나 이와 같은 자식 자랑은 자녀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곤 한다. 또는 자녀가 공부에 반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자식자랑하는 부모들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우리 부모님은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의 삶의 태도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자녀에게 전해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아이가 담임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평소에 부모님이 담임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하기 싫은데요? 저 엄마한테 가서 다 말할래요." 

"엄마가 선생님들은 월급을 적게 받는대요. 그래서 선생님 되지 말라는데요?" 

"선생님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세요?"

"엄마가 공부는 학원에서 하래요."


  담임선생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는 아이들의 부모님을 상담해보면 그 이유를 알겠더라. 

"거기 애들이 좀 수준이 떨어지더라고요. 담임선생님께서 좀 엄하게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희 친척 중에 기자가 있는데요. 뭔 일이 벌어지면 다 기사로 내보낼 수 있어요."

"우리 애는 공부 안 시켜도 돼요. 하고 싶은 거 하게 내버려두세요."


 이렇듯 아이들은 부모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보고 배운다. 남들에게 자식 자랑을 하는 순간에도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배울 수밖에 없다. 


"우리 애는 스스로 척척 알아서 공부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못하는 게 없어요. 나중에 판검사가 돼서 효도하겠다고 하지 뭐예요. 호호.  그런데... 그 집 애는 어때요?"


   실컷 자랑을 하는 그 순간은 우월감에 취해 기쁠지 모르나, 그 얘기를 듣는 부모들은 가슴에 큰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 자식걱정을 안 해본 부모가 어디 있으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자식 때문에 눈물 흘려보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 

  자식 자랑 배틀에서 이겨봤자 우리 아이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 친구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자세, 베푸는 태도, 리더십 등 세상을 살아가면서 익혀야 하는 덕목들을 하나도 배우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남을 뭉개고, 자신을 과시하는 법만 알게 될 뿐이다. 

   인생의 긴 레이스는 끝까지 달려봐야 아는 법이다. 내가 무시하고 상처 준 사람이 언젠가 나를 끌어내릴 수도 있는 게 세상사 아니겠는가. 겸손한 자세를 몸소 실천해야 자녀가 성공의 길목에 섰을 때 뜻을 이룰 수 있다. 

  자식자랑은 부부 사이에서만 해도 충분하다. 남에게 자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아이가 기죽는 일은 없다. 오히려 남 앞에서만 실컷 자랑할 뿐, 가족 안에서 충분히 칭찬받지 못하는 아이라면 아이의 자존감은 한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3) 엄마는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나를 공부시킨다?


  부모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혼심의 힘을 다해 자녀를 키운다. 그러나 자녀들은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향해 '네가 자식 낳아봐~ 그래야 알지.'라는 말을 하던가.

  그렇다. 아이들은 잘 모른다. 엄마아빠가 먹을 것, 입을 것 하나하나 다 아껴가면서 교육비를 대고 자녀의 성공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한다는 것을. 그래서 아이들은 가끔 의심하곤 한다. 

  '우리 엄마는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나를 공부시키나?'  

  어른이 되면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가를 알겠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은 정말로 이런 생각에 쉽게 빠지곤 한다. 부모가 자녀의 학업 성취결과를 타이틀로 삼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렇게 됐을 때 문제점은 학습 동기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온전히 스스로, 나를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공부는 부모 좋으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 결과 아이들은 공부를 무기로 '이거 안 해주면 공부 안 할 거야!'라고 외치며 부모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한다. 이때부터 부모는 자녀에게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다. 

  

  공부는 나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는 것, 나의 꿈을 펼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아이들은 어찌어찌해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진 모르나 그 이후가 문제가 된다. 명문대를 졸업하긴 했으나,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진 못한다는 말이다.  

  '공부는 너를 위해서 하는 거야'라는 말을 하려면 아이들의 성취 결과를 남들에게 과시하는 용도로 내비치면 안 된다. 공부한다는 것은 그 과정 자체로도 의미 있는 것이다.  





 3) 실패해도 괜찮아.


  고학년 아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꽤 많은 아이들이 '남들 보다 내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리 엄마가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거는 기대가 많아질수록 아이들은 가슴속 깊이 숨겨둔 고민을 터놓을 곳이 없어진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나는 것이다. 


  부모의 기대가 커질수록 아이들은 '실패하면 큰일 난다'라고 생각한다. 영어 학원 레벨테스트에서 떨어지면 큰일 나고, 선행학습 진도가 늦어지면 큰일 나고, 원하던 학교에 못 가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남들 앞에서 잘한다고 자랑했는데... 못하면 어쩌지?'

  '엄마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공부를 안 할래. 시도를 안 하면 실패도 없으니까.'

  이와 같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여러 가지 회피 기재를 만든다. 예를 들어 일부러 공부를 안 하는 척한다던가, 공부를 못할 수밖에 없는 핑계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원한다. 

우리 자녀에게든 옆집 아이에게든 자랑보다는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말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이 나누어야 할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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