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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Mar 14. 2021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온 남편 간호하기

무서웠던 48시간.

"오빠, 잘 잤어?"

"ㅜㅜ 아니 잠이 안 와서 못 잤어"

"엥? 항히스타민 안 먹었어?"

"ㅇㅇ"

"왜 안 먹었어 ㅠㅠ 컨디션 좋을 때 접종해야지. 에휴... 떨려?"

"ㅇㅇ"

"30분 뒤 접종이네."

"ㅇㅇ"

"괜찮을 거야 잘 다녀와 ㅠㅠ 혹시 너무 힘들면 오늘 집에 오지 말고 거기서 쉬어. 기차 타면 힘들잖아"

"접종 후 6시간 정도는 멀쩡 하대. 퇴근하면 바로 집에 갈래."

"알았어. 내가 집안일 다 할 테니까 오빠는 주말 내내 그냥 누워있기만 해."



남편은 백신 접종 전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서 무척 피곤하다고 했다. 잠이 안 올 것 같으면 항히스타민을 먹고 푹 자라고 누누이 말했지만 남편은 약을 먹지 않았다. 약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크게 아픈 게 아닌 이상 되도록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고집을 부리고 약을 먹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이제부터는 남편이 푹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중요하다. 접종시간은 오후 3시였다. 집에 도착하면 저녁 7시 30분쯤 될 것이다. 그때까진 별 일 없겠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금요일에 접종한다는 거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남편은 오래전부터 백신을 맞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남편은 병원에서 백신 접종 신청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제일 먼저 줄을 섰다. 그래서 접종일을 '금요일'로 지정할 수 있었는데 나머지 동료들은 고민하다가 늦는 바람에 월~목에 접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만약 백신을 맞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남보다 빨리 줄을 서서 접종일을 '금요일'로 정하길 권한다.


먼저 접종한 동료들의 후기는 어마 무시했다. 밤새 고열, 근육통, 오한에 시달리고 다음날까지도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오히려 건강한 20대-30대 청년들의 증상이 심했고, 50대 장년층은 가볍게 넘어갔다고 하는데 젊고 건강할수록 면역반응이 더 크게 일어나는가 보다. 



남편은 기차를 타고 무사히 집으로 귀가했다. 밖에 주르륵 내리는 비를 뚫고 집으로 달려온 남편을 얼싸안았다. 남편은 지난 2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2시간 넘게 KTX를 타고 집으로 한걸음에 달려오는 자상한 사람이다. 집으로 오는 길이 힘들다고 징징댄 적이 없는 든든한 남편이기에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남편을 위해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잔뜩 해놨다. 현미밥, 콩나물국, 고기반찬, 미역줄기 볶음, 땅콩조림, 김치, 밀푀유 나베, 후식인 토마토와 파인애플까지 밥상에 차렸다. 남편은 밥 한 그릇을 금세 뚝딱했다.


저녁 8시. 남편은 평소와 같았다. 아직 아무런 증상이 없다고 했다. 아마 새벽에 증상이 나타날 거라며 타이레놀 2알과 항히스타민 1알을 먹었다. 전날 잠을 자지 못한 남편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8시 반부터 쌔근쌔근 자기 자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아 보여 나도 마음을 놓고 10시쯤 잠들었다.


새벽 3시. 남편이 잠에서 깼다. 타이레놀을 복용했기에 열은 없는데 오한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이불을 하나 더 꺼내서 남편을 덮어주었다. 남편은 그렇게 한두 시간 더 힘들어하다가 다시 잠들었다. 남편은 다음날 하루 종일 신생아처럼 잠을 잤다. 아마 항히스타민을 먹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피부염으로 항히스타민을 꽤 자주 복용해서 그런지 약을 먹어도 졸리지 않는데, 남편은 워낙 약을 멀리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하루 종일 약기운에 취해있었다.   


다음날 오전 8시. 남편은 온몸에 근육통이 느껴진다고 했다. 특히 엉덩이 근육과 팔근육이 아프다고 했다. 남편은 온몸에 힘이 없어 물병 따는 것도 버겁다고 했다. 만약 백신을 맞은 다음날 근무해야 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오전 10시. 남편의 심박수를 쟀다 내 심박수는 68인데 남편의 심박수는 80에서 100까지 올라갔다. 남편은 정말 가만히 누워만 있었는데도 심박수가 꽤 높게 나왔다. 평소 심장이 안 좋은 사람은 백신을 맞으면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점심으로 팥죽을 먹었다. 집 주변에 죽 가게 있어서 방문 포장 해왔다. 물론 편하게 배달시켜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그릇에 뜨거운 죽을 부을 때 그 안에서 나올 환경 호르몬이 얼마나 많을지 떠올리면 귀찮아도 그릇을 들고 방문 포장해오는 게 백배 낫다. 


"오빠, 죽 사 왔어 죽 먹어."

"으응. 잘 먹을게."

"오빠 만약에 백신을 맞고 혼자 집에 있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

"음... 외롭고 서러웠을 것 같은데. 간호해주는 사람이 있는 게 좋은 것 같아."

"혼자 밥 차려 먹긴 어렵겠지?"

"그렇겠지? 밖으로 나가 사 먹기도 힘들고. 그냥 배달시켜먹었을걸?"

"우린 둘이 같이 살아서 다행이다."

"다음에 네가 맞으면 내가 간호해줄게."

"아냐 싫어! 무섭다고."


오후 2시. 나는 산책을 하러 나갔다. 남편도 같이 따라나서겠다고 우겼지만 24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푹 쉬는 게 좋기 때문에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나갔다. 혼자 산책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산책길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다들 야외로 놀러 나갔나? 


저녁 7시. 남편은 또다시 오한에 시달렸다. 이번에는 열도 났다. 온몸에 열이 펄펄 났다. 남편은 또다시 타이레놀을 2알 복용했다. 열 때문에 남편의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열은 39도까지 올랐다. 남편이 몹시 걱정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은 열, 오한, 근육통으로 힘들어하다가 8시쯤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남편은 컨디션이 매우 좋다고 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타이레놀 1알을 복용했다. 지금 남편은 지난 48시간 동안 아무 일이 없었던 것 마냥 내 옆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다.


"이제 안 아파. 안 아프니까 너무 행복해."


남편은 내 얼굴에 쪽쪽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이러다가 지난밤 아팠던 기억이 다 미화되는 거 아냐? 월요일 동료들한테 괜찮았다고 하고 다닐 거지?"

"응. 이미 미화된 거 같아.^^"

"어이구 나참 ㅋㅋ. 몰라 나는 맞기 싫어. 어제 열나는 거 보니까 진짜 맞기 싫더라. 열 때문에 피부염이 심해지면 어떡해."



뉴스를 보니 코로나 환자가 500여 명 가까이 나왔다. 남편은 이제 코로나 환자가 몇 명이 나오든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했다.  


"진짜 안 맞을 거야? 만약에 백신을 맞으면 마스크 벗어도 된다고 하면 어쩔 거야?"

"그럼 당장 맞을래."


현재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공공장소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했다고 한다. 백신이 무섭긴 하지만 마스크만 벗을 수 있다면야 얼른 가서 백신을 맞고 싶다. 정말 그런 날이 곧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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