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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석 Jun 21. 2019

[오리지날] 6.25 첫 승전이 뭔지 아세요?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오리지날] 6.25 전쟁 첫 승전이 뭔지 아세요?
 
여러분의 댓글로 먹고 사는 조홍석입니다.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그런데... 제목이 이상하죠?

<가리지날>이 아니라 <오리지날>이라니..
6. 25 기념일을 맞아 웃음기 쫘악 뺀 글

하나 남기려구요. =.=
 
6. 25 전쟁에 대해선 다들 잘 아시리라 믿지만...
우리 국군의 최초 승전이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육탄 10용사? 춘천 방어전?
오호... 제법 아시는 분이시네요. 하지만 땡~!
 

1950년 6.25 일요일 새벽 4시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당시
국군의 최초 승전보는 부산 앞바다,

즉 대한해협 전투에서 울려 펴졌습니다.
 
응? 6.25 전쟁인데 웬 부산 앞바다냐구요? O.O
임진왜란 이야기 같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날로 잠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선에서 북한군 탱크가 밀고 내려오며

전면전이 시작되었고 삼척, 울진, 정동진 등
동해안에 북한 상륙정이 상륙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해군은
오전 11시, 진해 부두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을 동해로 출항시킵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전투함이지 배수량 450톤,

3인치 함포를 단,
미국에서 해안경비대가 쓰던 소형 함정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 전투함 백두산함)


백두산함은 적이 추가로 동해안을 남하해

상륙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 빠른 속도로

부산을 거쳐 북상하던 중 그날 밤 8시,

우연히도 캄캄한 어둠 사이로
수상한 화물선 한 척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합니다.
 
배 이름도 국기도 게양하지 않고 검은색을 칠한

이 배에 가까이 다가간 백두산함은
정체를 밝히라고 요구하며 근접했다가

1000톤 급의 대형선박 갑판에 대포는 물론
양쪽에 기관총도 달려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적의 무장화물선이 국군 함정보다 2배는 더 큰 크기!
 
다윗과 골리앗간의 싸움과도 같은 한 시간여의

포격전 끝에 적선을 격침했는데...
이 과정에서 김창학, 전병익 두명의 해군 장병이

순직하고 맙니다...
(두 분 모두 겨우 21세 청년..

 현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유해가 모셔져 있고
 윤영하급 고속함 14번함 김창학함,

18번함 전병익함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
 
전쟁 첫날 밤 치열한 포격전을 승리로 이끈

백두산함은 순직 장병 2명만 포항에 내려놓은 채

동해안을 따라 북상해 묵호항 방어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대한해협 전투라 불리게 된 이 해전에서

가라 앉은 적 무장화물선의 정체는
나중에 북한 정보를 분석하면서 정확히 알게

되었는데 제766독립보병연대
무장 침투요원이 무려 600여명이나 타고 있었던

게릴라 침투선이었던 겁니다!!!
 
즉, 전쟁 시작과 동시에 대한민국 최남단 부산항에

북한군 정예병을 침투시켜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북한이 치밀하게 짠 계획을

정말 기적적으로 막아 낸 것이죠.
 
이 전투에서 승리했기에 부산이 안전지대가 되어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이 부산항으로 집결할 수

있었고 인천 상륙작전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겁니다.
 
이에 미국 역사학자 노만 존슨 (Norman W.

Johnson)은 "6.25 전쟁의 승패는 이날 밤

대한해협 전투에서 결정되었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처럼 한국전쟁의 성패를 좌우한 전투였던

대한해협 전투는 대한민국 해군의 자랑스런

역사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잊혀져 있습니다.
 
이 전투도 감동이지만 백두산함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도 눈물겹습니다... T.T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
 
초대 해군사관학교 교장이자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원일 제독은 숨겨진 영웅이십니다.
20세기판 이순신 제독이라고 불러야 할 분입니다.
1909년 평양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의 고문을 당한 뒤 상해 임시정부로 건너 가

활동을 전개한 독립지사인 손 제독은
상해 항구에서 강대국들의 해군 함대를 보면서

강력한 해군 건설을 원하셨다고 하지요.
이에 상해 국립중앙대학 해양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3년간

항해술을 배운 보기 드문 엘리트였습니다.
 
이후 1945년 해방후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왔음에도

11월 11일 해군의 모태가 되는
해방여단을 창설하고 이후 미군정에 의해 공식 해안경비대로 인정받습니다.
1949년에는 동양 최초로 해병대도 창설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지만
당시 해군 상황은 일본군이 쓰다 진해항에 버려둔

목선 수척에 미군이 남긴 소형 상륙정 밖에 없어

해전이나 육상 타격이 가능한 제대로 된 함정 한 척 없었어요...OTL


이에 1949년 6월 '함정건조기금 거출위원회'를

결성하고 본인의 월급과 해군의 월급 일부를

기금으로 모으고,
군인 부인들이 빨래와 바느질해 기증한 돈,

일부 국민들의 기금을 모아 4개월여 만에
1만 5천달러를 만들어서 미군 퇴역 함정을

사오겠다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이에 감동한 대통령이 정부 지원금 4만 5천달러를

하사해 총 6만 달러 기금을 들고
1949년 10월 미국으로 건너 가 함정 구입을

시도합니다.
벗뜨, 그러나...
 
손원익 제독 "대한민국에도 제대로 된 함정이

                        필요대한. 여기 돈 가져왔해군"
미쿡 국방부 "왓더... 너네 나라 이 배 사 가서

                        전쟁할 거 다안다메리카!"
손원익 제독 "총도 제대로 없는데 무슨 전쟁이냐황당.

                        제발 함정 한대만 팔아라절박"
미쿡 국방부 "됐다리아~ 의회에서 팔지 말라고 이미

                        말했다메리카~ 딴 데 알아봐라유에스"
 
당초 2300톤급 호위함을 사 갈 계획이었다지만

그동안 이승만 대통령이 "무기만 주면
당장 북진 통일하겠다"고 큰소리를 쳐 온지라,

한국군이 도발할 것을 우려한 미국 의회가
판매를 금지하는 바람에 이미 함포도 다 철거되어

민간에 판매한 중고 함정들만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우선 1척의 민간 선박을 구매한

날이1949년 12월 26일....
결국 손원일 제독은 추가로 함정을 구매하러

유태인 사업가들과 흥정하는 사이,


후배 해군 장교들이 직접 배를 몰고

태평양을 건너면서 부셔진 곳은 수리하고

하와이에서 3인치 함포를 사서 붙이고,
괌에 들려 실탄 100발을 사서 진해항으로

들어오는 눈물나는 항해를 하신 겁니다. T.T
 

(하와이 항구에서 3인치 함포를 조립중인 백두산호)
 
당시 하와이 교민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군함이

하와이 항구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항구에 나가 환영행사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민들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미 해군 태평양 함대의 거대한 순양함들
사이에 끼여서 나타난 쪽배....
이에 말을 잇지 못하던 교민들은 그래도

다시금 마음을 굳게 먹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고 합니다. 쓰면서도 슬퍼요... T.T
 
그리하여 이 짠내 가득한 항해 끝에 백두산 호가

진해 항에 들어온 건
전쟁이 발발하기 겨우 2달 전인 4월 10일...

기금 마련부터는 10개월,
함정 구입 후 반년의 세월을 거쳐 한국에 온 것이죠.
 
이때 들여온 4척의 초계정 중  배 이름이

 마침<Whitehead>호.
당초 미국 해양 경비대 함선이었던 이 배는

 2차 대전 당시 사망한 화이트헤드 소위를
기념해 붙인 이름을 갖고 있었고

번역하면 '백두'였기에 자연스럽게 백두산호라고

이름을 새로 붙이고 대한민국 첫 해군 기함으로

사용했는데 이 배가 결국 나라를 구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겁니다..
 
당시 고작 100발의 실탄 밖에 없어

이걸 아끼려고 평소 훈련 시엔 나무로 만든 모조탄만

쓰다가 대한해협 전투 당시 처음 쏜 실탄 20발중

5발을 명중시켰다고 하니 대단히 훌륭한 성적을

내신 거에요. ^^//
 
당시 북한도 제대로 된 함정이라곤 부산 앞바다에

가라앉은 그 배 뿐인 상황이라
엄청난 타격을 입어 지리멸렬하게 되지요.

이 같은 백두산함의 분투 덕분에 UN군은
해군 전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므로써

이후 서해안에서는 지금의 NLL선까지
북한을 압박할 수 있었고 휴전 당시까지도 대동강

하구 석도, 함경남도 길주 앞 여도, 양도,

원산 앞바다 여도 등 다수의 섬까지 장악할 수

있었던 겁니다.

즉, 점령한 지역을 경계로 휴전선을 그을 때

원칙대로 했다면 북한 지역의 섬들까지

우리 땅으로 할 수 있었지만 미국이 이를 포기해

NLL을 이미 크게 양보한 상황이란 것도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아요.

 

이후 백두산함은 인천상륙작전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1959년 퇴역한 뒤 

본체는 해체되었지만

3인치 대포와 마스트(돛대)는 지금도

진해 해군사관학교 교정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 목선 하나가 경계망을 뚫고 삼척항까지

온 사건을 보면서 70년전 열악한 상황에서도

바다를 지킨 백두산함 이야기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발 나라를 지킨 선조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후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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