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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매일 쓰기

100원의 가치.

by 글쓰기 하는 토끼

내가 어릴 적 백 원은 큰돈이었다. 과자 하나에 십 원, 이십 원 하던 시절이었으니깐. 난 엄마에게 매일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 백 원 만~ 백 원 만."

하며 조르기 일쑤였다.


친척 집에 방문하면 삼촌들이 가끔 500원을 주실 때가 있었다. 그럼,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돈으로 무엇부터 살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온종일 생각하곤 했다. 엄마가 오셔서 나의 전 재산을 빼앗아 가시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엄마는 나에게 오셔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한테 맡겨 놔. 잃어버리기 전에. 집에 가면 줄게."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엄마에게 돈을 드렸지만 되돌려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알면서도 냉큼 엄마에게 드렸던 적도 있고 때로는 그리 쉽게 드리지 않고 엄마 속을 애 태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승자는 항상 엄마였다. 돈을 빼앗긴 나는 마음속으로 했었던 나의 수많은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어 샅샅이 흩어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평상시 사 먹고 싶었던 과자들, 종이 인형, 나비 모양 머리끈 등이 사라지고 없었다.


간혹 엄마는 받은 용돈 중 일부를 주시기도 하셨는데 내가 받은 용돈이 워낙 컸었던지라 새 발의 피도 되지 못했다. 한마디로 성이 차지 않았다. 짐작하건대 엄마는 그 돈을 생활비로 쓰셨을 것이다. 4남매였으니 자식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겠는가?

먹고사는데 급급했던 시절이라 사교육비야 덜 들었을지 몰라도, 먹고 입히는 거야 지금이나 예나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인형을 좋아했다. 마른 인형이라고 머리가 금발이며 신발도 신겨 있고 아주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인형을 좋아했다. 다리도 구부려졌다. 다리만 구부려졌다. 집에 있는 이 인형은 옷이 한 벌 뿐이라 재미없었고 신발 한 짝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난 이 인형보다 더 저렴한 종이 인형을 많이 갖고 놀았다. 옷도 여러 번 갈아입힐 수 있었지만 머리는 내가 땋아 주지 못했다.


그때 즈음 미미의 집이라고 2층 집이 새로 나왔다. 난 너무 갖고 싶었다. 그 2층 집만 있으면 무슨 놀이든 할 수 있고 심심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혼자 놀아도 거뜬히 몇 시간이고 놀 자신이 있었다. 나는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도 이 미미의 집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들어가는 나에게 이 장난감을 사주시는 분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도 장난감 가게에 가면 큰 인형의 집에 눈이 돌아가곤 한다. 아이들이 사달라고 하면

"네가 몇 살인데 이런 거 갖고 노니? 집에 놀 때가 어디 있어. 집에 있는 장난감도 다 버릴 판에."

하면서 절대 사줄 생각이 없다.


이 백원이 정말 가치가 있을 때는 커피 자판기 앞이다. 찬바람 부는 어느 날 자판기의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가 먹고 싶은데 내 지갑에 딱 백원이 모자를 때 백원이 만 원보다 더 아쉬운 순간이다. 땅바닥에 백원이 떨어진 들 허리 아파 줍지 않는 백원이 대형 마트 앞 동전교환기에 만 원을 넣고 9,900원을 거슬러야 할 때도 그렇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라는 속담이 아로새겨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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