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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내양 언니가 갑자기.

by 글쓰기 하는 토끼


나는 초등학교 졸업 후 추첨으로 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 당시엔 고등학교를 가려면 성적순으로 가야 했다.
모든 고등학교가 시험을 쳐서 갔다. 지금도 내가 사는 동네는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간다.
그러니 아이들이 얼마나 피 터지며 머리 싸매며 공부해야 하는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성적이 안되면 집 근처 학교는 꿈도 꾸지도 못한다.

내가 아는 집 아이도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1시간이 걸려 고등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그러니 엄마들이 아이 공부에 얼마나 열을 올리는지 알 만도 하다.

나는 중학교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6학년 2학기 때쯤 변두리 초등학교 애들이 종종 전학을 자주 왔다. 시내에 있는 중학교를 가기 위해 부모들이 전학을 많이 시켰다.

교육열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고, 교육정책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바뀌었다.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말도 참 많다.

내가 중학교를 배정받은 후 그 학교를 엄마에게 말씀드리자 엄마는 뛸 듯이 기뻐하셨다.
중학교와 같이 딸린 고등학교는 소위 상위권 아이들만 갈 수 있는 학교였다. 그래서 중학교도 그에 걸맞게 영향을 미쳤다.
그 당시 대부분의 부모들은 같은 중학교를 다니면 그 고등학교 진학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건 지금도 약간의 영향을 미치는지, 같은 중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그 고등학교에 원서 내는 일이 더 쉽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다.

내가 버스를 타고 다닐 당시 그때는 버스 안내양이 있었다.
아침 등교 때 버스는 항상 만 원이었고, 앞문으로 못 타면 버스비를 낸 후 뒷문으로 가서 탔다.
아침 출근, 등교 전쟁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바뀌지 않으니 참 신기하다. 인구가 줄었는데도 말이다.

보통 버스 앞부분에 사람들로 꽉 차고 뒤로 갈수록 널널 할 때가 많았다.
그날도 보통 때와 다름없는 아침 등굣길이었다. 나는 버스 몇 대를 보내고 난 후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엔 정말 사람이 많았다. 버스 기사님은 운전만 하시면 되시니 지금보다 버스 운전이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난 항상 이 부분이 궁금했다.

버스 안내양 언니는 나에게 버스비를 받고 뒷문으로 안내한 뒤 나를 버스에 태웠다.
그날따라 유독 버스에 사람이 많았다. 차 문도 닫지 못하고 버스는 출발했다.
나는 버스 뒷문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닫히지도 못한 버스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정말 사력을 다해 매달려 있었다.
자칫하면 떨어져 크게 다칠 것 같았다. 곧 버스는 출발하였다.

버스 안내양 언니는 꽉꽉 눌러 사람을 태우고 버스 옆면을 '탁탁' 치며 '오라이'라고 외쳤다.
버스는 출발했고 안내양 언니는 뛰다시피 하며 버스 뒷 문에 올라탔다. 바로 내 뒤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떨어지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버스 안내양 언니는 닫히지 않은 버스 뒷문에 매달려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으로 사람들을 밀어 부쳐 버스에 사람들을 더 태웠다.
이제 그만 태워도 될 것 같은데, 버스안내양 언니가 움직이면 한두 명쯤은 거뜬히 더 탈 수 있었다.

한가한 버스를 타게 되는 날, 사람들이 모두 타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제야 요금을 받으러 다녔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중심을 정말 잘 잡았다. 버스 기사님은 운전만 하셨고 승객과의 실랑이는 버스 안내양 언니가 도맡아 처리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니 안 했니 하는 것들이었다.

나에게 가끔 말도 걸어 주는 언니도 있었다. TV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돼먹지 않은 언니도 있었다. 그런 언니들한테는 승객들도 깨깽하며 기를 죽였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이 언니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인가 한순간에 버스에서 이 언니들을 볼 수 없었다. 버스 기사님이 이 모든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버스에는 현금 요금함이 설치되었다.

이번에 중학교 가는 아들 녀석이 중학교 배정 통지서를 받아 왔다. 다행히 집 근처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그래서 버스 탈 일은 없지만 아들은 버스를 타지 못하는 아쉬움을 나에게 계속 피력하였다.

이 녀석들이 성인이 돼 직업을 선택하게 될 때 어떤 직업이 남아 있게 될지 심히 걱정된다.
없어지는 직업만큼 새로운 직업들도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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