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야 커피 좀 타갔고 와 봐라." 이 눔의 커피를 끊을 수가 없다. 나는 껄떡 대면 애들한테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처음엔 애들도 내 커피 심부름을 좋아했다. "엄마, 커피 타 드릴까요?" 하며 종종 물어봐 주기도 했다. 이렇게도 타줘 보고 저렇게도 타줘 보면서 나에게 커피 맛이 어떤지 확인하곤 했다. 맛있는 커피를 나에게 타주는 것이 일생일대의 숙명인 듯 자청했다. 그러다 내가 하도 많이 시키니 이젠 눈까지 흘기며 그만 마시라고 핀잔을 준다. 제발 불어나는 몸무게 걱정해야 한다면서.
나는 믹스 커피를 좋아한다. 결혼 전 회사 다닐 땐 오전에만 커피를 7잔에서 8잔을 마셨다. 가히 중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못 먹어서 손이 떨리거나 하진 않았으니 오해는 하지 마시라.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할 때도 커피를 마셨다. 타놓고 바로 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 식은 커피를 한 번에 털어 넣는 일은 일도 아니었다. 언제 우아하게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나 했었던 적도 있다.
지금은 글을 쓰다 보니 커피를 찾게 된다. 뭔가 왠지 있어 보이고 싶어서 먹기도 한다. 괜히 커피숍에 노트북을 끌어안고 가 쓰디쓴 드립 커피를 한잔 시키고 똥폼을 잡는다. 거들떠보는 사람은 여태 한 명도 없었다.
집에는 그 노랑 색깔 나는 믹스커피를 박스째 사다 놓고 먹는다. 끊어 보려 많이 노력해 보았다. 거듭 실패만 하였다. 커피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사다 놓았다. 커피 한 잔. 직장을 다닐 땐 업무에 시달리다 보니 잠깐의 커피 한 잔이 나에겐 큰 위로가 되었다. 어느 날 같이 일하는 남자 동료가 나에게 "차라리 담배를 피우는 게 어때?" 했을 정도였다.
육아를 할 때는 지친 몸 잠시 잠깐 쉬고 싶어 커피를 마셨다. 2,3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도 내 시간인 것 같아 좋았다. 주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홀짝이며 마셨다. 아기들한테 금방 들켜 그 시간마저 쪼개서 아기들과 같이 써야 했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커피 석 잔은 기본으로 마신다. 내가 먼저 한 잔 타서 먹고 지나가던 남편 불러 세워 또 한잔 타오게 한다. 그러면 남편은 '저놈의 소파 괜히 샀네' 하면서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아 꼼짝을 안 하냐면서 타박을 했다. 그래도 나에게 커피는 타다 준다. 우리 집에서 남편은 물을 가장 적게 넣어 커피를 탄다.
1호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면 꼭 무언가 다른 걸 나에게 요구해 사실 귀찮다. "엄마, 거품 내서 타 드릴까요? 우유를 넣을까요? 저만 믿으세요. 정말 맛있을 거예요" 한 20분 걸린다. 기다리다 지쳐 목이 다 빠진다. 그래서 난 손사래를 치며 마다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쨌든 타다 주면 군말 없이 먹는다.
2호는 가장 만만하다. 걸핏하면 부려 먹는다. 공부를 하고 있어도, 책을 보고 있어도, 방바닥에 뒹굴뒹굴 놀고 있어도 불러 놓고 커피를 타 오라 시킨다.
"엄마, 제가 전생에 커피 알바생이었어요?" 하면서 입이 대빨 나온다. "아휴, 커피 좀 그만 드세요."
나는 커피가 좋다. 나에게 커피가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건 중요하지가 않다. 다만 커피를 마시는 그 짧은 시간. 그것을 간절히 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