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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Feb 11. 2023

방귀이야기.

줄행랑


  엘리베이터를 탔다. 병원에 입원한 1호 때문에 신경을 쓴 탓인지 도로 내가 몸 져 눕게 생겼다.
  같은 병원 안 내과에서 진료를 보고 오는 터였다. 안 그래도 속이 불편해 진료를 보았는데 속에서 자꾸 꾸룩꾸룩하며 이상한 낌새를 보였다.

  사람 많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방귀가 나오려는 것이다. 창피한 건 둘째치고 이 냄새를 어쩌란 말이냐.
  난 최대한 필사적으로 참아냈고 다행히 방귀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꾸욱하고 내 몸 안으로 속 들어가 버렸다. 방귀를 머금은 내 몸은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난 참을 수 있었다.

  '이 방귀 참 아깝다. 얘도 자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참 힘깨나 썼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방귀가 불쌍해졌다. 이 방귀를 이렇게 버릴 게 아니고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방도는 없을까 하며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별 뾰족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하! 하는 순간 나는 방귀가 머물러야 하는 곳이 퍼뜩 생각이 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야기 속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나는 방귀를 항아리에 가두고 아주 구수하게 발효시켜 조금씩 가지고 다닐 참이다.

  그래서 가지고 다니는 방귀를 어디다 쓸 것이나 하면.
  우리 애 괴롭히는 친구 놈에게 가 모른 척 뿌려 주고, 너무 잘난 척 있는 척 뻐기는 애나 어른한테 가 뿌려주고, 그리고 난 머리끄덩이 잡히기 전에 냅다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붙잡히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달리기 연습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 순간이다.
  한데 우리 아들은 입원해 있으면서 간호사가 가져다준 약을 받으며 한다는 소리가

  "너무 좋아."
  "왜?"
  "이제 밥 먹을 시간이잖아."

  아... 저 발효시킨 구수한 방귀를 아들에게도 뿌려주고 싶다. 언제 나을 거니. 이제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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