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매일 쓰기

큰언니와 개떡

by 글쓰기 하는 토끼


"엄마, 오늘 할아버지네 가세요?"

"응, 있다 갈 건데 왜?"

"그럼 저 간식으로 떡 좀 사다 주세요."

"무슨 떡 먹고 싶어?"

"쑥떡이요."


우리 집 1호는 쑥떡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많이 먹어서 그런가 부다.


쑥떡 먹는 중


시어머님은 봄만 되면 동네분들과 여기저기 다니시며 쑥을 뜯으셨다.


"어머니 요즘 쑥 함부로 드시면 안 돼요."

"얘, 걱정하지 말어. 안 그래도 차 안 다니는 데만 골라 깨끗한 걸로다 뜯으니께. 무릎 아파서 이제 이 짓도 못해 먹겠네."


하시곤 남편을 불러 방앗간을 가셔서 함움큼씩 해다 이 집 저 집 나눠 주셨다.

그 쑥떡이 우리 집에 오면 찬밥 신세였다. 난 항상 냉동실에 고이 모셔 두기 바빴다.

옆 동에 살다 다른 아파트로 이사 나와서도 난 이 쑥떡을 봄만 되면 시어머님께 받았다.

마지막 남은 쑥떡


한 번씩 난 아이 간식으로 이 쑥떡을 종종 쪄 주곤 했었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어머님 건강이 더 안 좋아지시면서 이제 이 쑥떡은 구경도 못하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난 냉동실에 아껴 놓은 마지막 남은 쑥떡을 꺼냈다. 찜기에 물을 올리고 종이 호일을 깔아 그 위에 냉동된 쑥떡을 올려 찌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하교 후 좋아할 아이 얼굴이 생각났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배시시 웃음이 났다.

찌고 있는 쑥떡을 보니 아스라이 옛날 생각이 났다. 난 1남 3녀 중 넷째인데 위로 큰언니와 여섯 살 차이가 난다.

내가 중학교 때 큰언니는 직장을 다니는 초년생이었다. 공부를 잘했고 반장도 놓친 적 없는 인기쟁이 언니였다.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큰언니는 상고에 진학했고, 졸업 후 바로 은행에 취업이 되었다.


따뜻한 봄날 토요일 오후였다. 난 친구와 약속이 있어 나가는 길에 쑥을 캐고 있는 큰언니를 만났다. 주변에 쑥을 캐는 젊은 여성들이 두서명 띄엄띄엄 보였다.

날씨가 정말 좋은 날이었다. 언니는 나가는 나를 붙들어 세우고 같이 쑥을 캐자고 했다. 용돈을 크게 부르며 나를 꼬시기 시작했다.

난 한참을 고민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언니와 쑥도 캐고 싶고 친구와 놀고도 싶었다.

나는 언니의 제안을 과감히 뿌리치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친구를 만나면서도 마음속은 계속 언니 생각뿐이었다.

'언니랑 그냥 쑥 캘걸'

집에 오니 먹음직스러운 쑥이 소쿠리에 한아름 담겨 있었고, 그날 저녁 엄마는 쑥향이 그윽한 된장국을 끓여 주셨다. 그리고 쑥버무리도 상 위에 올라왔다.


우리 언니는 내가 고등학교 때 시집을 갔다. 나는 학창 시절 용돈이 궁하면 큰언니가 일하는 직장에 놀러 갔다. 점심때 가면 맛있는 돈가스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언니의 화장품이며 옷이며 나는 언니걸 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쑥을 보니 그 옛날 언니가 쑥을 캐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무지근하게 아려온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넘의 밭을 탐내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