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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Oct 27. 2022

10년 전 나를 만나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


'딩동~~ 딩동~~~....'

"똑똑똑... 계세요?"

"아.. 잠깐만요.. 나갈게요. 조용히 좀 해주세요.. 지금 아기가 자고 있어요."

"어머.. 죄송합니다. 아이를 키운 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제가 실수를 했네요."

"아.. 네. 그런데 누구시죠?"

"네.. 안녕하세요? 저는 10년 후의 지금의 당신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혹시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지금 아기가 막 잠이 들었어요. 시간은  많이 드리지 못하지만 일단 들어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거실에 들어온 10년 후의 나는 거실을 쭉 한번 둘러봅니다. 아기 용품들이 상당하고 아기 장난감이며, 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10년 전의 나는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커피 한잔 드릴까요? 아니면 음료수 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마실 것을 챙겨서 가지고 왔어요."

"호호호. 그런 것도 가지고 다니시는구나."


10년 전 나는 누군가 찾아오면 부담스러웠습니다. 일단 씻어야 합니다. 아기랑 같이 있다 보면 아기를 누군가 봐주지 않는 이상 편하게 씻을 수가 없지요. 그리고 먹을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나 먹는 것도 허겁지겁 먹는 판국에 누군가가 와 뭔가를 대접해야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마실 차를 직접 준비하고 다니신다고 하니 너무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손님 집에 방문할 때 내가 마실 음료를 준비하고 다니는 사람은 잘 없으니깐요.


"아기가 정말 예쁘네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겠어요?"

"글쎄.. 저는 눈에 넣으면 아플 것 같은데요.. "

"아.. 그렇죠? 눈에 뭔가 들어가면 아프죠.. 하하하"

"근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제가 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시간은 많이 뺐지 않을 테니 저하고 이야기 조금 할 수 있을까요?"

"네.. 아기가 잘 때 저도 좀 쉬고 청소며 밀린 집안일들을 해야 하니 하실 말씀 하시고 다음에 아기가 좀 크면.. 그때 다시 얘기 많이 나누어요."

"네.. 감사합니다. 일목요연하게 말씀드리고 얼른 갈게요."


"요 근래 안 좋은 일 있으셨죠?"

"어머 그걸 어떻게 아세요?"


10년 전 나는 그 소리를 듣고는 금세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듯 얼굴을 푹 숙이고는 다시 평온해지기를 바라며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동생 금방 다시 생기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보다 본인 몸부터 챙기셔야 해요.. 유산하고 나면 출산이랑 같다고 하잖아요.. 아이가 있어서 몸조리하기가 쉬워 보이진 않지만 둘째 다시 가질 실려면 건강해야 합니다."

"........................"

"울지 마세요.. 둘째 곧 생기다잖아요.."


10년 전 나는 첫째를 가지기 전에 유산 경험을 한번 했었어요. 그리고 첫째를 낳고 '설마 또 유산하겠어?' 하는 안일한 마음과 한 번의 출산 경험으로 방심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다시 두 번째 유산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유산 경험과는 달리 마음도 너무 아팠고 몸도 한 번에 '훅' 갔습니다. 첫째가 있어서 유산 후 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친정이나 시댁이나 저를 도와주실 분들은 없어서 그것이 정말로 서러웠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다시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거 잘 챙겨 먹고 몸 관리 잘할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릴 말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아이 교육에 조금 여유를 가지세요. 이렇게 발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사교육비 좀 줄이세요. 별의별 것 다 시켜도 다 소용없어요."

"....................."

"문화센터 이런데 안 다녀도 됩니다. 아이랑 편하게 그냥 있으세요. 아이랑 편하게 마음 편하게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명심할게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마지막으로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또 안 할 수가 없겠네요.."

"저 이래 봬도 건강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둘째를 낳고 나서 얼마 후 어지럼증으로 쓰러지실 거예요."

"................................"

"천장이 막 빙빙 돌고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서 토하면서 응급실에 실려 가시게 될 겁니다."

"정말요?"

"네.. 그러니 제발 몸 관리 좀 잘해 주세요.. 엄마가 잘못되면 집안이 초토화됩니다. 집안일 좀 안 하면 어때요? 좀 지저분하면 어떱니까? 아기 키울 때는 다 이해하니 쉬어야 할 때는 쉬어야 합니다. 제 말 새겨들으세요."

"저에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알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아기가 깰 시간이라 더는 시간을 드리기가 힘들 것 같아요. 오늘 너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에도 다시 와주실 수 있으시죠? 10년 후의 당신도 건강하시고 너무 고군분투하면서 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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