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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모락모락 나는 강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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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하는 토끼
Apr 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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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양도 많고 너무 커 그냥 지나칠 법한 저 강냉이를 남편이 냉큼 집어 카트 안에 넣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자동으로 머리가 돌아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걸 먹겠다고?' 하는 눈빛으로 남편을 쳐다봤다.
"금방 먹어."
하면서 애써 나의 눈빛을 피하며 짐짓 못 본 척한다.
'아니 우리 집에 애가 셋도 넷도 아닌 달랑 둘인데 대체 누가 저걸 다 먹는다고 산다는 거지. 그렇다고 하루 세끼 맥주를 밥 먹듯이 먹는 술꾼이 있어 안주 삼아 먹는 것도 아니고.'
나는 정말 곰곰이 생각했다. 대체 누가 저걸 다 먹을까 하고. 며칠이 지났다. 알게 모르게 강냉이의 양은 조금씩 줄어 갔다.
오늘 아침도 나는 애들 학교 보내 놓고 뜨뜻한 전기장판 아래 배를 깔고 누워 책과 커피 한잔 그리고 저 강냉이를 담아 왔다. '맛있는데' 하며 한 대접 더 퍼와 또 먹었다.
글을 쓰다 보니 요즘 부쩍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뭐든 옛날 일과 결부시켜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통에 옛날 일이 자꾸 소환된다.
나 어릴 적 동네에 한 달에 한두 번 뻥튀기 아저씨가 오셨다. 뻥튀기 아저씨가 오시면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제일 먼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집 안에 있어도 용케 알아채고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가 쌀이며 콩이며 있는 거 없는 거 모두 달라며 조르기 일쑤였다. 재빨리 갔다 놓아도 늘 순번에서 밀려 한참이나 기다린 후에야 우리 차례가 왔다.
'뻥'하고 터지기 직전 가끔 아저씨가 얘기해 주실 때도 있었고 너무 바쁘면 그럴 겨를도 없이 뻥하고 터졌다. 오매불망 자기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옹기종기 몰려 있던 아이들은 그 소리에 모두 놀라 뒷걸음치며 달아나기 바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방금 막 튀겨져 따뜻한 온기가 붙어 있는 강냉이와 쌀튀밥은 정말 맛있었다. 아저씬 주변에 빙 둘러앉은 아이들에게 한 번씩 막 튀겨져 나온 것들을 한 손에 한 움큼씩 쥐어 주셨다. 두 손에 받아 든 그 튀밥을 한입에 다 쑤셔 넣고 단숨에 먹어 치웠다.
가끔 색다른 곡물을 갔다 놓는 사람도 있었다. 먹음직스러워 침을 꼴깍 삼켜도 튀기는 값이 숱하게 나가는 물건이었는지 아저씨도 잘 안 주셨다. 양도 제법 작아 얻어먹을 수도 없었다. 알뜰히 탈탈 털어 검은 봉지에 잘 담아 동여 매 제 주인에게 인계되었다.
다시 제자리를 찾은 아이들은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제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다 된 아이는 커다란 봉지를 양손 가득 받아 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집에 돌아갔다.
나는 주로 작은 언니와 가서 기다렸다. 다 되면 집에 들고 와 그냥 먹는 법이 없었다. 언니와 장난치며 먹었다. 이렇게도 먹어보고 저렇게도 먹어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달짝지근한 강냉이를 먹고 있으니
동네
담벼락 옹기종기 모여 있던 때 묻은 옷을 입고 허름한 신발을 신고 놀던 그때 그 아이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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