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흙바닥 가득 '탁탁' 튀기며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흙이 사방으로 흩어지던 옛 외갓집 생각이 절로 난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철로 된 꽃무늬 있는 은색 상을 펼쳐 놓고 바글바글 된장을 끓여 호박잎에 밥을 싸 먹었다. 또한 비가 오지 않아도 아침 댓바람엔 물안개 그득히 집 주변 전체를 감싸는 팔공산 끝자락에 우리 외갓집은 있었다.
그리고 집 주변으로 복숭아밭이 둘레둘레 모두 감싸고, 장독대 주변으로 작은 개울도 하나 흘렀다.
자고 일어난 아침에 뿌옇고 희끄무레한 안개가 사방천지 피어 올라 여기가 어딘지 저기가 어딘지 구별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모습 또한 장관이라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나는 여름방학 숙제로 그림을 그려가야 했다. 그래서 흰 도화지에 하얀 색연필로 무척 애써가며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아무리 색칠해도 그 하얗색 몽개몽개 피어오르던 몽환적이면서 너무나 아름답다 생각이 들던 그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짜증을 많이 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안개와 내가 느낀 감정을 온통 쏟아부어 그린 그림을 모두에게 보여주며 "저기 좀 보세요.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못 미치는 내 그림솜씨에 늘 한탄만 할 뿐이었다.
가만 그 안개를 보고 있으니 절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경이로웠던 생각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흙바닥에 '탁탁탁' 떨어지며 내는 빗방울 소리와 흙이 튀기는 그 모습을 보는 재미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지금은 아스팔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아야 해서 그때보다 재미는 덜한 듯하다.
복숭아나무 잎사귀 위로 방울방울 매달린 빗방울이 또르르르 떨어지며 내는 소리, 개가 가끔 개집에 들어앉아 가르르릉 거리며 내는 소리, 개울이 넘쳐 콸콸콸 흘려 내려가는 소리, 기와집 위로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며 내는 소리,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흙내음 가득한 마당은 고요하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