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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역시 호빵이지 호빵.

by 글쓰기 하는 토끼


겨울이 왔다. 하지만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다. 춥다 싶으면 따뜻해져 있고, 영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겨울은 벙어리장갑도 끼고 목도리도 하고 털모자도 쓰고 찬바람 씽씽부는 날, 길거리에 사람 흔적 보이지 않는 흙길에, 회색바람 흙먼지 폴폴 날리는 어스름한 길을 혼자서 투벅투벅 걸어봐야 제맛인데 말이다.

그리고 걷다 보면 침이 꼴깍하고 저절로 넘어가지는 그 비주얼의,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보기만 해도 뜨끈뜨끈해 보이는 그 달콤한 호빵은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필요 없었다.

그러니 길을 걷다 말고 곁눈질로 그 호빵에 눈이 계속 돌아가고 손은 저절로 바지주머니를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뒤적거린다.

동네어귀 한 군데는 꼭 있었던 조금만 구멍가게는 겨울만 되면 어김없이 이 호빵기계를 밖에 내놓았다. 내가 우리엄마 손을 잡고 이곳을 지나칠 때면, 나는 어김없이 걸음이 느려지고 코를 벌름거렸다. 하지만 호빵을 사달라고 엄마께 진상을 부리진 않았다. 그렇지만 가는 길이 바쁘지 않을 땐 우리 엄마는 이 호빵을 한 번씩 사 주시곤 하셨다.


'드르르륵'

"호빵 하나만 주세요."


나는 가게에서 방금 막 산 호빵을 두 손 가득 받아 들고 뜨거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야말로 '호호' 불어가며 조심스레 한입씩 먹었다. 입안 가득 후후 불어대며 먹는 하얀 입김이 금방 날아가듯 사라 없어졌다. 한입 가득 달콤함이 사방으로 퍼졌다. 벙어리장갑을 낀 손은 호빵을 감싼 종이를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스레 살며시 벗겨냈다. 탱글탱글한 하얀 속살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이내 금세 그 모습 또한 자취를 감추듯 순식간에 없어졌다. 다 먹고 나면 언제나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그 달콤함을 다시 머릿속으로 상기시키듯 되뇌었다. 바로 훅하며 차가운 바람이 샘이라도 내듯 입가에 묻은 빵조각을 채갔다.




호빵에는 야채와 팥 두 종류가 있다. 예전엔 야채를 더 좋아했지만 지금은 팥이 더 좋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머니는 내 어릴 적 팥죽도 많이 끓어 주셨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팥죽에 대해서도 써보리라. 새알심을 넣은 팥죽과 안 넣은 팥죽.


옛날생각이 나 대형마트에서 이 호빵을 두 박스나 샀다. 봉지째 전자렌지에 30초만 돌리면 뜨끈뜨끈한 호빵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난 밥통에 호빵을 그 전날 넣어 두고 먹는다. 밥풀이 호빵에 달라붙어 귀찮긴 해도 추운 겨울 이만한 호사가 또 어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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