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매일 쓰기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니.
by
글쓰기 하는 토끼
Nov 3. 2023
영화관 알바를 그만둔 지 여러 날이 흘렸다. 나는 그동안 자지 못한 잠을 원 없이 잘 것처럼, 시체처럼 방바닥에 철썩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사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자녀들이 다 컸으면 몰라도 중딩아이와 초딩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밤 10시 전에 잠들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보통 아이들이 잠이 들고 나서야 잠을 잤다. 그러니 내 평균 수면은 4~5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영화관 알바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이유인즉슨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ㅇㅇㅇ 이시죠?"
"네, 누구세요?"
"여기는 ◇◇◇회사인데요. 혹시 **회사 미화원 채용하는데 면접 보시겠어요?"
"아.. 저는 지금 다른 곳에 다니는데요."
"전에 이력서를 제출하셔서 연락드렸어요. 지금 회사가 확장을 해서 추가로 모집 중입니다."
"근무 조건이 어떻게 되나요?"
"오전 6시부터 오전 12시까지이고 토, 일요일, 공휴일 모두 쉬고 평일만 일해요. 그리고 화장실 청소 없고 사무실 청소만 합니다. 급여는 160만 원입니다."
들어보니 괜찮은 조건이다. 같은 일이면 주말도 쉬고 급여도 더 준다는데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바로 면접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영화관을 그만두었다.
새로운 곳에 출근하기까지 며칠 여유가 있었다. 그동안 난 또 다른 곳에 면접을 보게 되었고, 채용이 되었다. 여긴 독일계 외국인 회사였다. 채용당시 6대 1의 경쟁이었고, 미화경력 10년 이상의 쟁쟁한 분들을 다 물리치고 당당히 채용되었다.
바로 다음 날 출근했다. 이 회사는 복지가 참 좋았다. 그만두시는 분도 5년간 근무를 했고, 직원분들이 너무 좋다며 입이 침이 마르게 칭찬하셨다.
곧 청소 담당 소장님께서 여기저기 공장을 돌며 설명을 해주셨다.
"내가 깨끗하다 느끼면 남도 깨끗하게 느끼니 그렇게만 해주시면 돼요. 내가 이런 일 한다고 절대 자기 비하하거나 자괴감에 빠지시면 안 돼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니."
소장님은 나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이미 머리가 희끗하신 소장님은 법 없이도 사실 분이라며 같이 일하시는 여사님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난 하루를 일하고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휴가는 있지만 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함께 일하게 될 여사님은 4년을 다니셨고 단 한 번도 휴가를 쓴 적이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한 달을 일해도 휴가를 안 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여사님께 민폐를 끼치게 될까 두려웠다. 더구나 여기는 쉬는 시간도 많고 일도 많이 어렵지 않았다. 급여도 200만 원이 넘었다.
그럼에도
소장님께 못한다 말씀드리고 이유도 잘 말씀드렸다. 소장님은 많이 아쉬워하셨다.
나는 몇 달간 알바를 전전하며 많이 막막했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근무환경이나 급여, 처우등이 점점 좋아졌다.
그런 점에서
난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keyword
알바
직업
귀천
42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글쓰기 하는 토끼
아이들과 공부하면서 느끼는 아주 평범한 일상들을 유쾌하고 발랄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구독자
187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내 꿈같던 시절.
새벽의 또 다른 두 얼굴.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