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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매일 쓰기

죽기 위해 사는 것

새해를 맞이하여

by 글쓰기 하는 토끼


내가 중학교 때의 일이다. 국어시간이었고 선생님은 40대 중년 여성분이셨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우리들을 앉혀 놓고 간혹 철학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다.

가령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는 태어난 즉시 죽기 위해 사는 거야.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언젠간 죽지. 그러니 태어나는 것은 또 한편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과 같아."


뭐 이런 논리였다. 우리는 선생님의 그런 발언에 누구 하나 나서서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또 듣다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여자아이들은 선생님이 그러시거나 말거나 신경 쓰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하루는 과학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너네들 왜 사니? 왜 살아?" 했을 때 우리들은 "죽기 위해서요."라고 은연중에 대답한 것이 다였다.

그 말을 들은 과학선생님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대체 누가 그런 소릴 했냐고 물으셨다.

그제야 우린 국어선생님 얘길 해드렸고,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국어선생님은 그 후 그런 말씀을 안 하시게 되셨다.


이제 올해도 얼마 안 남았다. 새삼 국어선생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내 나이 벌써 내년이면 지혜를 알만한 나이가 된다.

그 선생님 말씀처럼 우린 하루하루 지나면 죽음의 문턱에 더 가까워지는 셈인데, 어떤 과학의 힘을 빌리더라도 죽음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또한 병이 들거나 나이가 들거나 사고가 나거나 하는 중에 어느 한 가지도 우린 선택하여 죽을 수도 늦출 수도 없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내 삶이 이날 이때껏 나를 요동치게도 기쁘게도 또는 깊은 수렁텅이에도 처박히게 했고, 이것을 무한히 잘 견디며 살았고, 또한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도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까지도 생긴다는 것이다.

이제 이조차도 이 나이가 되면 어떤 일이든지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되고, 동시에 오만가지 일을 다 겪었으면서 인생을 알아가게 된다. 더 이상 미래가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고, 어스름한 땅거미가 드리워진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함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삶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 어딘가에 매복되어 있는 맹수처럼 어둠은 늘 불시에 나를 덮치고 옥죄인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계속 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가오는 새해도 활기차게 맞이해야 한다.

때문에 갑진년엔 밝은 새날처럼 우리 모두에게 기쁘고 행복한 일들만이 있기를 바라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번 연도도 부족한 글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독자님들께 무한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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