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이는 문밖을 나서며 엄마가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미닫이문을 반쯤 열고 얼굴을 문밖으로 빼꼼히 내다보며 바깥을 살폈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미영이는 언제 빨았는지 모를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운동화 끈만이 이것이 하얀색 운동화였음을 증명하였다. 미영이는 운동화 한 짝을 꺾어 신고 목이 다 늘어난 분홍색 티셔츠와 아줌마들 몸빼바지와 흡사한, 무릎이 다 나온 검은색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신발 뒷굽이 다 닳아 운동화 뒤축의 경계가 모호했다. 귀염성 있게 생긴 얼굴이었지만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영이는 불안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다. 미영이는 아까부터 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이리저리 살피던 미영이는 몸을 아예 반쯤 빼 엄마가 오시는 방향으로 몸을 더 틀었다. 하지만 엄마의 기척이라고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이 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소용돌이치며 표독스럽게 화르르르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영이는 '쿵쾅쿵쾅' 요동치는 심장을 틀어쥐고는 뛰지 못하게 철저히 넘겨 버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렸다.
"미영아, 미영아 "
방 안에서 아빠가 불렀다.
"네"
"가서 술 한 병 사 오너라."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오늘 처음 겪는 일도 아닌데, 미영이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마치 아빠가 방 안에서 뛰쳐나와 미영이를 한 대 후려칠 것 같은 긴장감이 온몸을 타고 느껴졌다.
영팔이는 술주정뱅이에 선희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그 돈으로 생활하는 철천지 웬수 같은 사람이었다.
올 것이 왔다. 한껏 눈치를 살피던 미영이는 슬그머니 돈을 가지고 나와 슈퍼로 향했다. 하얀색 운동화를 질질 끌며 바지 주머니에 돈을 집어넣고 한쪽 손은 주머니 속에 넣은 채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그렇게 날뛰던 심장도 지쳤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미영아~"
미영이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얼굴을 핵 돌렸다. 엄마다. 엄마가 오셨다. 미영이는 펄쩍 뛰며 엄마 품으로 달려들었다. 선희는 그런 딸의 궁둥이를 한 손 가득 두드리며 좋아했다.
"왜 나왔어?"
"아빠가 술 사 오래."
미영이는 엄마의 품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엄마가 오셨으니 이젠 안심이었다. 뭔진 몰라도 엄마만 곁에 있으면 다 좋았다. 선희는 그런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더 꼭 껴안아 주었다. 바람이 들어 감기 걸릴세라 미영이의 옷매무새부터 고쳐 주며 자신의 잠바를 벗어 미영이에게 입혀 주었다. 그리곤 곧장 슈퍼에 들어가 소주 한 병과 두부를 사 들고 나왔다. 미영이에게 줄 과자도 하나 샀다.
"미영아, 있다 밥 먹고 먹어. 배고프지?"
"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네. 엄마 최고."
미영이는 금세 입꼬리가 올라가며 특유의 귀염성 있는 얼굴 표정이 되살아 났다. 선희는 검은 봉다리에 물건을 담아 한 손에 들고 미영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금방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