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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Oct 22. 2022

미숫가루

  

  나는 한 5년 전에 미숫가루를 했다. 처음 해 보았다. 그래도 시집와서 시어머님 옆에서 이것저것 하는 걸 많이 봐와서 그런가 몸에 좋다는 곡식들로만  샀다.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재래시장에  있는 방앗간으로 갔다.

  미숫가루를 직접 해보니 돈이 솔찬히 들어간다. 이런 나를 남편은 "그냥 사 먹는 게 훨씬 덜 들겠다"며 타박을 하였다. 꺼무잡잡한 검은색 나는 오곡 곡식들로 미숫가루를 했다.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봉지 봉지 들고 와서 시어머님과 친정, 형님네까지  골고루 나누어 주니 몇 봉지 안 남았다.


  시집와서 나는 시어머님 옆 동에 살았었다.

어머님은 철마다 쌀이며, 마늘, 참기름까지 오며 가며 늘 챙겨 주셨다. 쌀을 주셔도 한 가마니는 주셔야 했고, 마늘도 한 접을 주셨으니 누가 까는 사람이 없어 방치되다 어머님이 도로 가져가셔서 까셔 주시곤 하셨다.

  집에 먹는 사람도 없는데 그리 주셨으니 내심 귀찮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회사 갔다 와서 쉬고 싶은 맘이 굴뚝같아 부담감이 앞섰다.

  대놓고 싫다고 할 수 있는 처지도 못되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한 20분 거리의 다른 아파트로 이사 나오게 되었다. 그 뒤로 김치를 담으신 날은

  "얼렁 통 가지고 오너라."

  "참기름 짜 놨으니 가져가거라."  

  "너네 고춧가루는 있니?"

  "매실 걸렸으니 필요하면 가져가라."

  "마늘 찧어 놨으니 와서 가져가라."

등등 많이도 호출하셨다. 이제 갓 낳은 아기와 두 돌이나 지났을까 한 두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왔다 갔다 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애들 지금 낮잠 자는데 다음에 가지러 갈게요."

  "저희 먹을 사람 없어서 필요하지 않아요."

등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러다 어머님 건강이 더 악화되시면서 이제는 내가 김치를 담아 드리게 되었다.


  조건 없이 받을 때는 몰랐다. 철마다 농수산물 사다 쟁여 놓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일단, 믿을만해야 하고 제철에 사야 한다.

  조금만 시기를 놓치면 저장된 것을 살 수밖에 없다. 마늘도 두 접이상은 까서 얼러 놓아야 한다. 깨도 사다가 기름을 내려야 하고, 고춧가루도 직접 말려 빻아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아직 해보지 않았다.

  고추를 사다가 어디다 펴놓고 말리 난 말이다. 암튼 이래저래 농수산물 공수해 오는 것이 농사를 짓지도 땅도 없는 사람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날짜를 보니 깨와 고춧가루 살 때가 되었다. 지금은 가까이에 사는 농사짓는 지인에게 사서 먹는다. 한창때는 좋은 거 산다고 현지를 돌아다니면서 애 좀 먹었다. 그렇게 정성스레 식자재를 구입하면 음식도 맛있기는 하다. 뭐든지 처음만 한 게 없는 법이니깐.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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