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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 간 일

by 글쓰기 하는 토끼


미용실에 갔다.

나는 흰머리가 많다. 집안 내력이다. 엄마도 아빠도 흰머리가 많으시다. 이제 검은색 머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백발이시다.

나는 30대 초부터 흰머리를 뽑기 시작했다. 아마 20대 일 때도 흰머리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보이는 것만 뽑았다. 그래서 흰머리가 많은 이유를 집안 내력인가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지금도 내가 흰머리가 많은 이유를 모른다. 알 턱이 없지 않은가.

뽑다가 뽑다가 이제는 뽑아도 안 되는 시점이 왔다. 염색은 가능한 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처럼 백발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염색을 하러 미용실에 가야 했다. 집에서 염색을 한 적도 있었다.


미용실에 가는 불편함과 집에서 하는 불편함 중 어느 것이 불편한지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미용실이다. 내가 손재주가 있고 머리털이 상하지 않는다면 집에서 하는 것을 선호한다. 내가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용실에 가서 나의 머리카락을 맡길 때는 미용사의 손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예약도 해야 하고 미용실도 가야 하고 비용도 집에서 하는 것보다 많이 든다. 나는 염색약을 잘못 골라 한 1년을 정말 새까만 머리로 지내야 했었다. 집에서 하다가 머리카락이 많이 상해 거의 단발 커트로 머리카락을 잘라야 했었던 적도 있었다. 그 후로 미용실에 간다.


나는 미용실을 두 번 옮겼다. 한 번은 10년을 다녔던 곳이 폐업을 해서 못 다니게 되었고, 한 번은 미용사가 다른 미용실로 옮기면서 못 다니게 되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곳은 아들만 셋 키우는 엄마가 하는 곳이다. 성격도 수더분하시고 말수도 많지 않으시다. 예약을 꼭 해야 갈 수 있다. 막내는 우리 2호와 동갑이고 첫째는 고등학생이라고 하셨다. 그 미용실에 갈 때는 나는 읽지도 않는 책을 꼭 옆구리에 끼고 갔다. 옆구리에 끼고 간 책이 무색하게 꾸벅꾸벅 조는 일은 다반사고 아님 인터넷 쇼핑을 했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은 책을 읽기도 했었나 보다.

어느 날, 이런저런 얘기 끝에..

"혹시 작가님이세요?" 하시는 거다.

엥?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정식으로 책을 낸 작가도 아니고 등단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글을 안 쓰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책도 많이 읽으시고"

옆구리에 끼고만 다녔던 그 책? 말씀하시나 보다.

"블로그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와.. 대단하시다.. 글도 쓰시고."

"블로그에 글 쓰는 거 별거 아니에요.. 구독자분들도 몇 분 안 계시고."

"그래도 그게 어디예요? 글 쓰는 게 쉬운 일 아닌데"

나는 어깨가 조금 으쓱했다.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아셨지?'


역시 책은 읽으나 안 읽으나 옆구리에 꼭 끼고 다니는 걸로.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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