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미용실에서 파마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오는 것이다.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겠지 하며 미용실 밖으로 나와서 뛰기 시작했다. 막 뛰었다. 학창 시절 100m 달리기도 하기 싫어했던 내가 육교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단을 넘어서 뛰었다. 집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 우산을 갖다 달라고 할까 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보니 우산을 써도 다 소용없을 것 같았다. 괜한 짓 했다가 욕만 먹을 거 같아서 냅다 뛰기 시작했다. 비가 온몸으로 젖셔들고 옷이며 머리며 죄다 젖었다.
아! 내 머리. 방금 하고 나온 내 머리. 미용실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머리 한번 하려면 큰맘 먹고 미용실을 가야 했다. 근데, 방금 하고 나온 내 머리가 비에 홀딱 젖은 생쥐 같은 몰골이라니. 하나마나 한 머리가 돼 버렸다. 아! 아까워. 어떡하지.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일단 집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가는 지하주차장 입구에 다다라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휴 다행이다. 카메라를 켜고 셀카를 찍어보니 이런 몰골도 이런 몰골이 없다.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나는 한숨만 나왔다. 미용실 사장님께 우산을 빌려 달라고 할걸. 하지만 비 오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우산을 써도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오늘 날씨예보를 보긴 본 것 같은데 비 온다는 예보는 없었다. 아뿔싸, 내가 잘못 본 건가? 이제 노안이 와서 침침한데 눈이 어떻게 된 건가? 지하주차장으로 걸어서 들어가는데 경비 아저씨가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넨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줌마 몇 분을 만났다. "젖으셨어요?" "네. 우산이 없어서 홀딱 다 맞았어요. 그런데 비 오는 걸 보니 우산을 써도 다 젖을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우박이에요. 우박" "아, 그렇구나."
남편에게 데리려 오라 할걸. 미용실에서 책 좀 읽다가 남편이 데리려 오면 타고 갈걸. 후회막심이다. 하지만 이런 예기치 않은 사고나 불행은, 이렇게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듯 내리곤 한다.
이 미용실 사장님은 수더분한 것이 마음에 썩 드는 분이다. 말수도 별로 없으시고 어르신들에게도 참 예의가 바르다. 이렇게 머리를 바로 하고 온 날 머리가 홀딱 젖었으니 누구한테 물어 달라고 해야 하나? 하늘아, 네가 좀 물어내야 되겠다. 근데 집에 오니 금세 비가 그쳤다. 이런 젠장. 해가 반쯤 난다. 우리는 이런 것을 견디고 기다려야 해. 반짝 비치는 해를 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