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째 아이가 돌이 지났을 때부터 책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주 짧은 책 한 권, 5분 정도 읽어 주다가 차츰차츰 그 양도 늘리고 시간도 늘려가며 읽어 주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책 읽어주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하였다.
하루 일과를 모두 끝내고 아이와 둘이 누워 책을 읽어 주었고, 낮잠을 재우기 전에도 책을 읽어 주었다. 내가 몸이 너무 아프거나, 읽어주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을 제외하고는 항상 읽어 주었다. 보통은 1시간씩 읽어주고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도 넘게 읽어주는 날도 많았다. 책을 읽어 주지 않으면 나 스스로 뭔가 불안하고 허전하고 아이에게 이거라도 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릴 적 기억나는 일들은 별로 없다. 내 기억에 나는 초딩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했었고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2개, 아니면 3개를 맞고 오곤 해서, 부모님의 실망을 많이 끼쳐 드렸다. 우리 부모님은 자녀들을 학교에만 보내 놓으면 공부는 당연히 잘하는 줄 아시는 분들이셨다. 그럴 만도 하신 게 오빠, 언니들 모두 공부를 잘했었기 때문이다.
학원 하나 안 보내고, 집에서 공부를 봐주지 않아도 밥만 먹여 놓으면 알아서들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었으니 당연히 나도 그런 줄 아신 거다. 받아쓰기 시험지를 부모님께 보여드린 날, 난 아직도 우리 아버지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하기사 그렇게 작대기가 많은 시험지를 본 일이 없으시니 그럴 만도 하시겠다. 내가 공부를 어느 정도 하게 된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이다. 어느 정도 하게 된 거지 잘하게 됐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독서를 시작하게 된 시점도 아마 그쯤에서 인 것 같다.
나는 오빠, 언니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형제가 많음에도 어릴 때는 외롭게 지냈다. 부모님은 아시다시피 먹고사는 문제로 늘 바쁘셨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밥만 먹여 놓으면 알아서 잘 크는 줄 아셨던 분들이라 학교가 끝나서 집에 오면 나를 반겨 주는 사람은 없었다.
독서를 하게 된 동기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너무 심심해서 책을 읽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학년은 기억에 없고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집에 있는 책을 모조리 다 읽고, 옆집에 가서 또 빌려서 읽고, 하루 종일 정말 하루 종일 책에 빠져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하루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방학 내내 읽었던 것 같다. 그 여름방학에만 읽었던 것이 아니고 방학만 되면 책을 읽었다. 전집이란 전집은 다 갖다 빌려 읽었다. 학기 중에도 읽었는지 잘 기억은 나진 않지만 방학 때는 많이 읽었다.
그러면서 성적도 조금씩 나아졌고 고학년 때는 잘하는 편에 속하기도 했다. 이 초등학생 때의 독서가 나의 평생 공부습관이며 힘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책을 좋아한다. 이유는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재미있고 밥 먹는 것보다 좋다. 온갖 상상을 다 할 수 있어 좋다. 외로울 때 보면 친구이고, 슬플 때 보면 위로가 되고, 나의 미래를 책임져 주기까지 한다.
또한 내가 아이들에게 열심히 읽어주게 된 동기이며 아이들에게 이런 몰입의 독서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서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책 속의 지혜를 배우기 바라서이다. 나는 아이들이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 지혜가 많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지식과 지혜는 엄연히 다른 것으로 지식은 누구든지 얻을 수 있지만 지혜를 얻기는 그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어느 한마을에서는 나이가 오십은 되어야 어른 대접을 해주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 오십살은 되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지혜란 것은 경험에서 오는 것이 더 많다. 하지만 젊은 친구들 중에서도 이 지혜를 겸비한 사람들이 종종 있으니 우리 아이들도 이곳에 속하는 사람들이기를 바란다.
지혜의 사전적 의미를 됨 짚어 보면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이런 지혜를 얻으려면 우리 아이들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어야 가능한 일일까?
위 사진은 우리 아이들 어릴 때 모습들이다. 정말 책을 즐기면서 읽고 있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흐뭇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책을 보고 있어서가 아니라 책을 즐기고 있어서이다.
초등학생이 된 우리 아이들은 책보다는 게임을, 책보다는 영화를, 책보다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독서를 즐겨하고 책 속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그런 통찰력 있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고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