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면서 대외적으로 싸운 일이 딱 네 번 있었다. 모두 결혼하고 있었던 일이다. 어릴 때 싸운 일은 딱 한 번 기억나는 사건 외에는 모두 작은언니와 싸운 기억 밖에는 없다. 성인이 돼서는 누구와 싸워 본 적은 없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내가 못나서 그렇지' , '내가 하는 일이 뭐 그렇지' 하며 나 자신을 깎아 내기에 바빴고 운이 나쁨을 한탄했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그런 나의 낮은 자존감은 하등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 부러 자존감을 치켜세우러 애쓰다 보니 여기저기 부딪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내 새끼 어디 가서 싫은 소리 듣고 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쌈닭마냥 들이대지는 못했지만 장족의 발전을 해서 요목조목 따지고는 들었다.
가을이 막 접어드는 어느 날, 한낮의 더위는 여름 못지않게 더웠다. 아이들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 먹인다고 외출을 준비해서 3살, 5살 아이들을 태우고 병원 지하주차장에 들어섰다. 나는 들어가는 차였고 상대방은 나오는 차였다. 공간이 협소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 차와 내 차가 서로 지나가면서 살짝 접촉이 생기고 말았다. 창문이 열리더니 젊은 여자가 다짜고짜 반말이다.나는 최대한 예의를 다해서 말했다. 그러다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아이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실랑이는 길어지고 급기야 경찰까지 오게 되었다. "경찰이 얼마나 바쁜 사람들인데 이런 일에 경찰을 불러요? 그리고 몇 살인데 자꾸 반말이야?" "미친 × 아, 당신이 잘못했잖아" 뭐 대충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갔다. 우리 1호는 그 와중에 '쉬'가 마렵다고 하고 2호는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이 왔다. 아이들은 경찰차를 보더니 화색을 띠며 좋아했다 "와~경찰차다. 경찰 아저씨다." "서로 보험 처리하세요. 싸울 필요 없어요." 중재를 하기 시작했다. "사고가 났으면 먼저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닌가요? 다짜고짜 반말에 욕까지 하면서 왜 그래요? 그러니 결혼을 못 했지." 나는 쇄기를 박았다. 마지막 말은 나도 좀 심했던 것 같지만 내가 들은 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로 보험 접수하고 일단 싸움은 일단락이 되었다. 그 후로 아이들은 한동안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지 않으려 했다. "오늘 아빠가 운전하세요." 1호는 아직도 그때 싸운 일을 기억하고 있으면서 한 번씩 얘기한다. "아.. 그때 경찰차 온 거" 2호는 기억을 못 한다. 참으로 다행이다. 보험처리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집에 와서 차를 살펴보니 별로 티는 나지 않았다. 상대방 보험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저희 차주께서 선생님이 욕하시고 막말하셨다고 꼭 보상받고 싶으시대요." "차 어디가 긁혔는데요?" "바퀴 휠이요." 살다 살다 자동차 휠을 고치겠다고 하는 사람은 또 처음인지라. "네 고쳐드린다고 하세요. 저희도 흠집 난 거 새로 다 교체할게요." "그리고 막말하고 욕한 거 저 아니고 그 아가씨예요. 제가 아이 둘 태우고.." 나는 상세히 설명했다. "아.. 제가 그분한테 사기당한 느낌이네요.. 아이도 있으시고 말씀하시는 게 더 믿음이 가고 신뢰가 갑니다." 그 뒤로 보험회사 팀장님이시라는 분께 연락이 왔다. "그분이 오빠를 대동하고 와서 고소하겠다고 합니다. 저희가 잘 아는 공업사에 모시고 가서 무상으로 차를 고쳐 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예요." 내 원 참, 어이가 없어서. "고소하라고 하세요." 보험회사 팀장님도 혀를 끌끌 찼다. 보상은 안 해 주셔도 된다고 하셔서 우리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끝났다. 고소는 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요즘은 뭐만 하면 고소한대.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이런 마음으로 살면 싸울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