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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맛의 존재이유 - 2

by rabyell

유관부서와의 회의 3개를 끝내고 돌아오니 벌써 시계가 5시였다. 아직 못한 일이 많은데, 라며 솔은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듯 해야 하는 일들을 쳐냈다. 겨우 끝내고 보니 퇴근시간이 지난 지 벌써 15분이다.


"얼른 들어가야지. 다들 업무 마무리해."

"수고하셨습니다."

다른 이들을 따라 꾸뻑 인사를 했다. 가방을 들고 나가려는 찰나, 솔을 향해 던져지는 한 마디.


"벌써 들어가니? 역시 MZ세대는 달라."


퇴근 시간 즈음부터 보이지 않던 선배가 자리로 돌아오며 웃는다. 그렇게 말하며 옆을 지나가니 방금 피운 담배냄새가 확 풍겨왔다. 솔은 숨을 잠깐 참으며 얼굴이 찌푸러지는 것을 참았다. 그러고는 대꾸 없이 그저 웃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잔잔한 솔에게만 던져지는 돌.

꼭 팀장님 앞에서만 저러는 걸 보면 돌팔매 질에는 구경꾼이 필요한 모양이다. 한두 번 맞은 게 아니다. 그러지 말아 달라 하는 부탁에도 그저 친해서 치는 장난에 과민하다는 타박뿐이었다.


돌을 던져도 호수는 그저 일렁일 뿐이고, 개구리는 맞아 죽었지만, 솔은 다르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에그타르트를 건네는 것이다.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안녕하십니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함께 선배가 등장한 시간은 9시 03분. 본 중 최고로 늘어진 다크서클을 달고서 선배가 허리를 잔뜩 웅크린 채 자리로 들어왔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모두가 등으로 '어제 코인 땜에 늦잠 잤구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아.."

파티션을 뚫을 듯 깊은 한숨을 내쉰다. 들어보니 얼마 전부터 입병에 원형탈모에 불면증까지 겹쳤단다. 다른 사람들은 또 엄한 데에 투자한 탓이라 넘겨짚었다. 그리고 솔은 그제야 좀 속이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선배님 이거라도 드시고 힘내세요."

여느 때처럼 에그타르트를 건넸다. 건네기 직전 뚜껑에서 떼어 낸 포스트 잇은 다른 손에 쥐었다.


"땡큐, 근데 이제 이것도 그만 먹어야 할까 봐. 살까지 찌면 진짜 암울해 질듯."

솔은 순간 아쉬움이 스쳤지만 이내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에그타르트(흐린 맛)」


선배가 다시 거북이처럼 파티션 사이로 숨어들었을 때 솔은 손 안의 포스트잇을 펼쳤다. 그리고 휘갈겨 쓴 글씨를 내려다보았다.

'진짜 웃긴 걸 만들었네, 이루나. 이게 농담이 아니었다니.'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시 종이를 구겨 주머니에 넣고는 아무 일 없었던 양 메일함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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