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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Dec 27. 2024

흐린 맛의 존재이유 - 1

"안녕하십니까."

월요일 8시 47분, 먼저 출근한 동료들에게 인사를 꾸벅 한다. 솔은 여느 때처럼 어두운 색 슬랙스 차림이다. 사수 뒤를 지나 자리에 앉아서는 곧장 노트북을 켰다.


수첩에 적힌 오늘의 할 일을 훑어보고는 하나씩 메일을 열어본다. 메일함은 언제나 '읽지않은 메일: 0'을 유지하는 편이다. 


사무실은 언뜻 평온해 보이지만 주말 동안 쌓인 업무메일을 확인하느라 다들 분주하다. 점심을 먹고난 뒤에야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솔아 너 내가 사라던 코인 샀니?"

갑자기 옆자리 사수가 파티션 넘어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 아뇨."

"거참, 밥을 입 앞까지 떠다 줘도 못먹네. 어제 비트코인 1억 2천, 못봤어? 내말 들었으면 돈 버는 거였어. 요즘에 코인 안하면 안돼. 물가 생각하면 우리회사 연봉 상승률은 마이너스잖아. 이런 거에 투자 안하면 너 혼자 도태되는거야. 남자친구는? 남자친구도 코인 안 해?"


어제는 코인이 좀 올랐나보다. 다크서클이 짙은 선배는 하루 컨디션이 코인차트를 따른다. 한참 떨어졌을 때는 코인의 'ㅋ'자도 못꺼낼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코인은 하는 게 아니구나 싶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또 하라고 닦달을 하니 원. 그것도 업무시간에. 그냥 제발 조용히 하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은따를 자처한 솔이라도 같은 사수, 그것도 옆자리 선배의 말에 그렇게 대꾸할 수는 없었다.


"글쎄요, 따로 안할 거 같은데요?"

"하, 그럼 안돼. 공부해, 솔아. 내가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너가 공부해서 남자친구도 알려주고 그래야지. 대학도 좋은데 나온 똑똑한 애가 이런 부분에서는 영 바보같네."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런 대화의 끝에는 학벌을 걸고 넘어진다. 그럼 솔은 자격지심인가, 라며 속으로 생각한다. 잠잠하다 싶다가도 본인이 심심하면 솔을 쿡쿡 찔러보는 것 같다. 자신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열심히, 동시에 평온하게 살아내는 솔을 이런 선배가 참으로 못마땅하다. 


잔잔한 호수만 보면 돌을 던지는 사람. 솔은 선배를 그렇게 정의하곤 했다.




"선배님 이거 드실래요? 동생이 가게를 해서요."

출근하자마자 웬일인지 솔이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앞자리 동료가 자기도 달라고 했지만, 다음에 드리겠다며 선배에게만 에그타르트를 건넸다.


"오 좋지. 잘 먹을게?"

맛이 괜찮았는지, 다음에도 또 달라고 한다. 보통때 같았으면 맡겨놓은 양 말하는 모습이 못마땅했겠지만, 어쩐지 오늘은 솔의 표정이 묘하게 밝다.


'종종 가져올 일 있으면 선배님 먼저 드릴게요.'

메신저로 너스레를 떨었다. 평소와 사뭇 다른 솔의 표정과 행동에도 선배는 수상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오히려 잘됐지, 라며 솔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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