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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Jun 07. 2020

(단편) 보고서 : 메리에 대하여 1

아는 여자 이야기


      메리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비슷했다. 배고파 죽겠다는 파리 시민에게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 고 했다는 그 말은(진위를 떠나서) 순도 100%의 진심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진심과는 별개로 문제는 그 왕비가 물정을 모르는 어린 애였다는 데 있다.



        1979년, 메리는 한국의 조그만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충청도 어디쯤 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지명은 모른다. 그녀가 10살 되었을 무렵,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먹고 살 일이 여의치 않아 미국행을 결심하고 배를 탄다. 계획은 이랬다. 먼저 그녀의 아버지가 미국에 정착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 질 판단이 서면 나머지 가족인 메리, 어머니와 남동생을 부르기로 한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내를 먼저 불러 들였고 아이들은 일년 쯤 더 한국에 머물다가 미국에 갔다고 한다. 가는 여정도 쉽지는 않았던 모양으로 이민을 알선한 브로커에게 속아 한동안은 불법체류자로 살았다고 했다. 때문에 처음엔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던가.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뉴욕의 아스토리아에 정착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미국에 발을 디디고 정착하기로 마음 먹은 곳이 하필 뉴욕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이 그녀 인생 전반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메리를 처음 본 이들은 으레 그녀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했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녀를 떠올리면 같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내가 메리의 회사에 입사해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메리는 그 즈음부터 ‘명문가’라는 말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비록 개인은 훌륭하지 못하지만 좋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결혼을 하고 일가를 이루어 자녀 교육에 전념하는 여자라면 ‘명문가’ 를 이룰 수 있고 또 그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였다.


‘그게 여자로서의 소명인 것 같아요.’


메리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다.

 나로서는 명문가, 라는 낱말은 그게 사전에 있을까 싶게 생소했지만 여자로서의 소명이라는 것이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으로 얻는 후광이라는 걸 듣는데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강요하지 않는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내가 놀랐던가? 속으로 욕했던가? 그 당시의 나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입사 초년생이었던 나는 새로운 업무를 쫓아가기 여념이 없어서 메리의 명문가 타령도 좀 촌스러운 보스의 특이한 취향으로 이해해 버렸다. 그리고 다른 신입들과 그녀의 앞에 나란히 서서 명문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의 생경함은 씁쓸함 보다는 호기심으로 남았다.



       어린 시절 메리의 미국 생활은 고됐다. 그녀의 아버지는 세탁소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네일샵 에서 꼭 이주 한국인 답게 밤낮으로 부지런하게 일을 했다. 부모님 고생을 바로 옆에서 지켜 본 두 남매는 부모의 바람대로 공부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들로서는 공부가 언어 문제, 인종 문제, 경제 문제 등 이방인 삶의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한 단 하나의 선택지 였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이민 1.5 세대가 되었다.

     메리는 성실했다. 그녀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그녀는 정말 성실 하기만 했던 모양이다. 뉴욕 대학 의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그녀는 집, 학교, 도서관 만을 오갔다고 했다. 뉴욕을 말할 때 으레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그녀는 하나도 경험하지 못했다. 몇 년 전 내가 그녀의 친정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뉴욕 관광을 시켜 준다면서 나를 그리니치 빌리지에 데려갔다. 그 거리를 걸으면서 그녀는 못내 아쉬워했다.


‘그 때는 왜 과감하게 하고 싶은 것들을 못했을까. 지금의 나라면 훨씬 더 많은 것을 해 봤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일탈..’


‘남자 만나고 약 하고 그런 거요?’


‘뭐 비슷한 것. 근데 그 때는 부모님 고생하는 거 빤히 보는데 꿈도 못 꿀 일이었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애들도 있긴 있었는데…’




       메리는 측은지심에 대한 언급도 많이 했다. 그녀는 자신이 거느린 직원들의 처지를 진심으로 딱하게 생각했는데, 그들이 평생 월급쟁이나 하다가 명문가를 이루지 못할 까봐서 걱정하곤 했다. 그녀는 자신의 그 감정을 측은지심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주변인 들에게도,

‘측은지심을 가져 야지요.’

라고 얌전하게 권했다.

    한국말이 서툰 탓일까. 이 사자성어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하는 말 같진 않았다. 그녀는 생계를 잇기 위해 성심을 다하는 사람을 딱하게 여기는 상태를 측은지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때 궁금했던 점은 그녀의 연민은 배려일까 오만일까 하는 것이었는데 표정을 봐서는 물어봐도 대답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질문은 성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터였다. 메리는 매사에 진실했다. 그녀의 진실한 마음은 동쪽에서 해가 뜨는 것 만큼이나 확실했다. 그럼에도 나는 하얀 원피스에 김칫물 떨군 것 처럼 마음이 언짢았는데 나야말로 입에 풀칠하기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녀의 측은지심은 나 뿐 아닌 불특정 대다수를 향한 것이었기 때문에 서서히 그 찝찝한 기분은 잊혀져 갔다. 본인의 선의가 어쩌면 우월감에서 비롯한 다는 것을 누군가 조목조목 알려주었다 해도 그녀가 그것을 이해 했으리라고 보기 어렵다.




         그녀의 측은지심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는 사건이 하나 생겼다. 역시 입사한 지 채 일년이 되지 않은 때였다. 어쩌다 그녀와 나, 둘만 일찍 출근을 하는 바람에 시간이 남았다. 사무실 근처의 커피샵에 앉아서 커피를 주문했다. 그녀는 커피를 두어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기사 하나를 읽었는데요. 프랑스 파리의 번화한 거리에 홈리스 할머니가 살았대요. 맥도날드 주변을 배회하면서 남들이 버린 햄버거 찌꺼기를 먹으면서요. 그런데 그 분이 어느 날 죽었고 사후 처리를 해야 하니까 할머니의 과거를 파헤쳤는데요. 글쎄 그 할머니가 젊은 시절에는 대기업에서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 이었다는 거에요. 그렇게 잘 나가던 여자가 어떻게 홈리스가 되어 길에서 죽게 된 것인지.’


거기까지는 이상할 만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곧 메리가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주저함이 없는 눈 빛이었다.


‘그 할머니 얘기를 읽는데 로지가 생각 나는 거에요.’


로지는 나다. 내가 물었다.


‘왜요?’


‘로지는 아이도 낳지 않고 이렇게 하고 싶은 거만 하면서 살다가는 늙어서 돌봐 줄 자식도 없을 테고… 오갈 데 없이 길에서 얼어 죽을 까봐.’


나는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혼자 살면 안돼요. 존경할 수 있는 남편도 만나고 무엇보다 자식이 있어야 해요. 저는 꿈이 있어요. 마지막 순간에 내 자녀들에게 둘러 싸여서 웃으면서 가는 거요….’


그녀 눈에 눈물이 고였던가? 나는 결국 웃고 말았는데 메리가 나의 보스라는 점 보다는, 그녀의 진심 어린 태도 때문이었다. 타이밍 못 맞추면 자칫 따귀 거리일 법한 얘기를 그렇게나 진심을 가득 담아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녀의 눈에 담긴 진정성을 외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녀의 믿음이 무엇이건간에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건간에 그녀는 나의 삶에 관여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그 일을 하는데 용기가 필요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주저하는 것은 비겁자의 일이다. 그녀는 십자군이었던 셈이다.



      그녀가 이런 식으로 사고하게 된 것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들여다 보면 나름이 도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식은 너무 단순해서 도식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가부장제의 테두리안에서 훈육 받았고 결혼 이후에는 더 견고한 가부장 중심의 가정으로 이식되었다. 금상첨화 였는지 설상가상 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치는 간단하다. 대게는 인생의 어느 즈음에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겪는다는데 그녀의 얘기에는 그 흔적이 없었다.






      가부장 메커니즘의 모태는 메리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내내 살았더라면 자신의 딸에게 여성의 전통적 역할을 주입 하는데 그토록 집착 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그녀는 의도치 않게 뉴욕의 동양인 이주민이 되었고, 이민 2세들이 어떤 방식으로 집안에 똥물을 끼얹는가에 대해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예들을 목도했을 터였다. 그녀는 틈이 날 때마다 메리에게 여자로서의 순결하고 숭고한 삶에 대해 역설했다. 여자의 삶이란 남자의 성공으로 인해 빛나는 것이며 내조야 말로 가장 바람직한 삶의 지표라고 했다. 실제로 메리의 어머니는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내어 딸에게 그 증거를 보여 주는 듯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겉으로는 내조의 역할을 자처했으나(남편을 떠 받들었다) 안으로는 제반 사항의 의사 결정권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메리의 아버지는 사람은 너무 좋아, 라고 말할 때의 그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가정의 수장은 그녀의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맡는 게 여러 모로 나았다. 그러나 억지스럽게 라도 엄격한 가부장제를 고수해야 했던 이유는 그것이 중산층의 사고 체계라고 믿었던 까닭이다. 보수적인 생활 양식을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타지에서 이방인으로서 패배하지 않고 성공을 이루었다는 증거였던 셈이다. 콩가루는 타락의 증거였다. 나는 여전히 뉴욕에 살고 있는 메리 부모님의 집에 초대받아 며칠을 묶은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흠 잡을 데 없이 사이 좋은 부부였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시간은 메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녀에게 명백한 인생의 전환점은 단연 그녀 남편 칠수와의 만남이었다. 메리와 칠수는 신실하게도 한인 교회에서 만났는데 당시 칠수는 뉴욕에 어학연수를 온 유학생 신분이었다. 신분, 이라는 단어는 메리의 입에서 나왔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메리는 최상위 신분인 재미교포였고, 칠수는 최하위 신분인 단기 유학생, 집에서 유학 자금을 대 줄 형편이 안되어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야 하는, 그나마도 어학원 연수생이었다고 한다. 그게 진짜 계급이라도 된다는 듯 교포들은 그들만의 공고한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그 와중에 어렵사리 성사된 그 둘의 결혼 얘기는 번번히 신입직원 교육 때 메리를 통해 되풀이 되곤 했다. 그녀는 그 당시의 칠수가 얼마나 남다른 사람 이었는지에 방점을 두어 교육을 했다. 교육용 버전이 아닌 술자리 버전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메리 말에 따르면, 그 둘은 결혼 전까지 잠자리는 물론 키스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그들은 결혼을 했다. 그들이 결혼까지 이른 과정은 고루한 게 맞지만 그들의 결혼 자체에 흥미로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뉴욕 한인 사회에서 나름의 신분 격차를 극복하고(메리의 어머니는 몸 져 누울 지경이 되었다) 결혼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는 더 위대한 드라마가 되었다. 뉴욕대에서(하버드였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칠수는 전라남도 강진에서 오랫동안 터 닦고 산 누에 치는 집의 아들이었다. 게다가 딸 만 다섯 있는 집의 유일한 아들. 이후의 얘기를 들어보면, 모르긴 몰라도 이 결혼이 그들 가족에게는, 성안에 갇혀만 살던 아라비아의 공주가 날품팔이 알라딘에게 몸을 맡긴 이야기 만큼이나 극적이었던가 보다. 칠수도 그 나름으로는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할 만 했지만 그가 데리고 온 뉴욕댁은 어딘지 모르게 고귀하고(한국말을 잘 못했으므로) 넘치게 배운 데다(학벌로는 남편이 한참 기운다) 키는 얼핏 남편보다 한 뼘은 더 큼직한 늘씬한 미녀였으며 남편과는 무려 여덟 살 차이가 나는 어리고 고귀한 신부였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그녀는 사팔눈을 가지고 있었는데(후에 수술로 고쳤다.)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그녀의 사팔눈은 부활의 카츄샤 처럼 그녀의 존재에 신비감을 더했다. 누가 봐도 복 터진 건 칠수였지만, 대체로 같은 걸 보고도 달리 느꼈던 메리는 복을 받은 것은 자신이라고 믿었다. 시골 촌구석에 시집 온 며느리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그녀 말에 의하면 시집 온 이래 여태 그녀는 시가에서 설거지 한 번 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무능한 며느리를 너그러이 대해 준 시댁 식구들은 그녀에게 감사한 존재였다. 그녀에게 그리고 시누이들에게 고귀함은 무능함과 동의어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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