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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Jun 07. 2020

(단편) 보고서 : 메리에 대하여 2

아는 여자 이야기


     메리는 한국으로 시집을 온 그 날부터 여전히 뉴욕댁으로 살고 있다. 그녀는 이제 직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만큼 한국말도 잘 하고 초등학생인 두 딸이 있는 만큼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의 다양한 역할을 해야 했지만, 여전히 시집 올 당시의 고귀함과 무능함을 상징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상징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메리로서는 유리한 지점이 많았고(시누이들이 메리의 식구를 아침 저녁으로 거두어 먹였다. 그들은 근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때로는 당연히 그것이 족쇄가 되어 그녀를 괴롭히기도 했는데, 문제라면 괴로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녀만 모른다는 데에 있었다.




     메리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혼자 영화를 보거나 혼자 여행을 하거나 혼자 밥을 먹거나 하지 않았다. 심지어 혼자서 택시를 타는 것도 어쩔 수 없을 때에만 억지로 했다. 어쩌다 택시를 타게 되는 날에는 아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탑승한 내내 통화를 했다. 그녀가 어쩌다 내가 일하는 지점에 출장을 와서 호텔 투숙을 할 때면 꼭 나를 대동했다. 나는 멀쩡한 집을 놔두고 그녀와 호텔 객실에서 자야 했는데 그거야 나쁜 일이 아니었다. 편안한 객실 침대에 누워 그녀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하루 밤을 보내는 것 쯤이야 재미 라고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그녀의 이런 성향을 알았을 때에는 그저 뭐든 혼자 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가보다 하고 말았는데 얼마간 지켜 본 결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는 그녀의 가족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뭔가를 혼자 하겠다고 나서면 남편 칠수를 비롯한 온 시댁 식구들은 일단 그녀를 말렸고 어쩔 수 없을 경우에는 모든 것이 보고되어야 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가족들의 사정권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그녀는 어디에 있건 다섯 시누이들의 전화를 돌아가며 받았다. 밥은 먹었능가 로 시작되는 통화는 사실은 온갖 것에 대한 보고에 다름 아니었다. 시누이들로서는 양친 떠나 멀리 시집 온 어린 올케를 지극정성으로 돌 보아 주는 것 뿐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한 때 최진석 교수의 강연에 심취했다. 최진석 교수는 노자 철학을 강의하는 것으로 한 때 유명했는데, 메리는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라’는 최진석 교수의 강연을 듣고 한 동안 고민에 빠졌다. 그 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면서 고통스러워 했다. 그러더니 얼마 후 앞으로 시도 해 봐야 할 것들이라면서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종의 버킷 리스트였던 가 보았다. 거기엔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혼자 영화보기, 혼자 일박 이일 여행하기, 혼자 식당에서 밥 먹기, 혼자 등산 하기, 혼자 바다 가기…’ 사실 그리 대단한 일들도 아니었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굳이 혼자 할 일들도 아니었다. 메리가 그 리스트에 나열한 일들을 모두 시도해 보았을까? 그 중 한 두개는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그녀의 가족들은 욕망에 집중하는 완전한 독립체로서 메리가 필요한 건 아닌 모양이라고 짐작이 됐지만 그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특기할 만한 점은, 메리의 비현실적인 도덕적 잣대였다. 그녀의 남편, 칠수는 간혹 그 일로 곤란을 겪는 듯 했다. 메리의 말에 따르면 칠수는 회색지대가 많은 사람이라는데, 물론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긴 했지만, 한국 땅에 사는 아저씨들 중에 회색 지대 없는 이가 누구겠는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긴 하다. 메리의 바람대로라면 그녀는 진흙탕에 사는 흰 색 두루미였다. 흰 색 두루미가 아니라고 한대도 그녀는 적어도 흰 색 두루미이기를 원하는 삶이 바람직하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그녀의 연예인 선호 기준은 도덕성이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 이병헌은 그녀에게는 언제나 비난의 대상이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좋아해요?’


그를 좋아하는 나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도덕성의 잣대 앞에 사회적 성취나 마음을 울리는 연기는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더구나 성추문에 휩싸인 배우 라니. 그러한 메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손석희 였다. 벌써 몇 년 째 지속되어온 애정이고 영원히 지속될 것 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사석에서 잡담중에 손석희가 골초 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 날로 그녀의 손석희를 흠모하는 마음은 타격을 입었다.


‘담배를 피웠다니…. 몰랐네요.’


 그녀는 흡연을 도덕적 타락으로 보았고 그건 그녀의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모르면 몰랐지 안 이상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손석희 아웃. 담배 피우는 손석희를 좋아할 수 없어서 끙끙거리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깔깔 웃었다. 담배조차도 허락할 수 없을 만큼 인색한 그녀의 폭이 딱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노상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녀의 인간에 대한 교과서적 상상력에 대한 내 답 역시 언제나 같았다.


‘사람은 원래 그래요. …손석희 나 이병헌 이나 도찐개찐.’


그럼 그녀는 아연실색했다.

그녀를 알면 알수록 회색 지대가 넓다는 그녀 남편 칠수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편으로는 인사랍시고 여직원들의 어깨에 덥석덥석 손을 올리는 칠수의 습관을 회색지대라고 칭하는 건가 싶기도 했고. 하지만 그녀는 부부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결국 문제가 곪다 곪다 터지는 단계까지 가긴 했지만 그건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나는 메리를 좋아했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확연해 지곤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녀와 대화 하기를 즐기게 되었다. 간혹 언성을 높일 일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관계가 소원해지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내게는 고용주였고 우정이라고 부를 만한 관계 근처에서 선을 넘지 않았다.




    그녀와 나의 대화는 영화나 책도 아울렀는데 그녀는 종종 자서전에 감명을 받곤 했다. 어느 날은 반기문 자서전을 읽고서는 내게도 읽을 것을 권했다. 위대한 삶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미디어와 출판물이 죄다 동원되어 반기문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한국 부모들의 염원은 그들의 자녀를 제 2의 반기문으로 만드는 것인 듯 보였다. 메리도 그 영향을 받았는지 한 동안 그 얘기 뿐이었다. 나는 ‘사람은 죽어봐야 알아요’ 라면서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왜 그녀가 자서전에 몰두 했는지는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딸이 둘이 있었는데 누구에게나 부모 역할은 처음 이라지만 두 딸을 명문가 자녀로 키워내는 데 그녀는 유독 어려움을 겪던 중이었다. 큰 딸 하고 잘 풀리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여러 번 얘기하더니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딸 문제로 의사를 찾아 가서는 주로 남편 얘기를 하고 온다고 했다. 그녀는 큰 딸은 제 아빠를 닮았다고 믿었다. 의사도 그녀의 믿음에 동의했는지 어느 날은 본인이 울고 어느 날은 의사가 울었다고 했다. 한 시간 씩 상담을 받고 오면 다시 딸을 대면할 용기가 생긴다고 했다.




    그렇게 몇 년 희망을 갖는가 싶더니 큰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자 문제는 사뭇 심각해졌다. 부부 주변의 인맥을 동원해서 아이를 사립 중학교에 넣고서는 파티를 하기까지 했는데 그도 잠시, 딸 애가 친 사고로 부부가 일주일이 멀다 하고 학교에 불려 다녔다. 딸 애는 어느 날은 오토바이를 훔쳐 타다 걸리고, 어느 날은 무리 지어 소주를 마시다 걸렸다. 왕따 당하는 애를 때린 게 문제가 되기도 하고 가출도 틈 나는 대로 했다. 간간히 집에 붙들려 와 있는 날에는 그녀의 남편 칠수가 딸애를 죽도록 때리는 모양이었다. 칠수는 채벌을 신봉했다.


‘요즘 자녀 교육의 문제는 채벌이 없어진 탓이라고 하더라고요.’


메리는 칠수를 신봉했다. 처음에는 벌벌 떨던 메리 역시 이래도 저래도 안되자 매를 들었다. 딸 애가 매 든 아빠만 무서워하고 자신은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장이 잦은 애 아빠를 대신해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마땅히 때릴 게 없어 어느 날은 골프채로 아이를 때렸다고도 했다. 나도 여러 번 그 애를 볼 기회가 있었다. 세상 무심한 표정의 아이였는데, 표정과 달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기 좀 봐달라는 신호가 난무했다. 부모에게는 저 메시지가 안 보이는 건가 싶었다. 때려봐야 소용 없을 거라고 메리에게 심지어 칠수에게도 몇 번 말을 건넸지만, 그들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동네 창피를 면해야 했다.




   그러 던 어느 날, 메리는 죽고 싶다면서 전화를 했다. 그 즈음에

‘내가 죽어야 끝나요’

라는 얘기를 몇 번 들었던 터였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녀는 울었다. 딸 애가 자기를 때렸다고 했다. 먼저 때린 건 자신이었지만 딸 애가 자기 따귀를 때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어찌나 세게 맞았던지 다음 날 멍이라도 들면 어쩌냐며 울었다. 그러면서 그 애는 사람이 아니고 괴물이라고 했다. 사람이라면 저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 배로 난 애가 같지가 않아요.’

얼마 안 있어 메리의 딸은 결국 보통 학교로 전학을 당했다. 퇴학이 마땅하지만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해서 학교에서 선처한 거라고 했다. 메리와 칠수는 곧 유학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문제아인 딸을 외지에서 건사해 줄 사람을 찾느라 직접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을 방문하곤 했다. 명문가의 꿈은 소원해 보였지만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었다.




    그 즈음 나는 퇴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메리의 큰 딸이 초등학교 입학 할 때 쯤 입사해서 중학교 졸업할 즈음의 퇴사였으니 꽤 오랫동안 일을 한 셈이었다.

   고용주 부부의 가정사와 별개로 나는 나대로 고민이 많았다. 메리와 칠수는 직원 100여명 되는 중소기업의 공동 고용주였다. 얼추 10년 차가 되어 가고 승진이 거듭 되자 나는 창업주인 두 부부와 가까이 일할 기회가 잦아졌다. 그러면서 메리보다는 칠수와 마찰을 빚었다.




    업계에서는 칠수가 뉴욕에서 메리를 낚아오지 못했으면 그 촌놈이 어떻게 이 만큼 성공했겠느냐고 떠들어댔다. 메리 역시 그런 구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크게 타격 받지 않았다. 회사가 성장하면 쑥덕거리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메리는 칠수를 떠받들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자신의 역할이 칠수를 보좌하는 것임을 모두가 알아주길 바랬다. 직원들, 심지어 가까이 지내는 나에게도,


‘내 남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남다른 사람이에요.’


란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했다. 그녀는 실제로 그렇게 믿는 듯 했다. 남편이 아니었으면 자신은 사람 구실을 못했을 거라고 했다. 스물 너덧 살에 한국말 서툰 채로 낯 모르는 곳에 와서 남편과 시댁 그늘에 살았으니 일견 틀린 말도 아니었다.




    타격은 칠수가 받았다. 회의나 행사에서 칠수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는 순간들이 생기곤 했다. 직원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회사가 확장되면서 메리와 칠수의 역할이 확연히 나누어 지자 사업주로서의 업무 성과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메리는 맹한 데가 있었지만 인적 자원 관리에 재능이 있었고, 칠수는 사업가로서 손익 계산 감각이 뛰어난 편이었지만 직원들이 따르지 않았다. 직원들은 은근히 메리와 일하게 되기를 원했으나 아무도 그것을 꺼내 놓고 얘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칠수가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가 사무실 컴퓨터를 여러 대 깨부순 일이 생겼다. 매니저만 모아 놓은 회의였는데, 그 날 따라 메리와 칠수의 의견이 갈리었고 매니저 몇 명이 칠수의 제안에 수긍하지 않자 칠수가 일갈을 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서야 직원들은 그 간의 칠수의 표정과 행동들을 반추해 보기 시작했다. 메리는 이 일을 두고 칠수가 요 사이 갱년기 증상으로 힘들어 하고 있을 뿐 특별한 의도가 있어 한 일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나는 사표를 제출했고 두 어 달 실랑이를 벌인 후 사표가 수리되었다. 사표를 제출하기 몇 달 전부터 칠수의 직속으로 인사 관리를 진행했다. 칠수가 컴퓨터를 부순 일도 그 때 즈음 일어났다. 나는 그를 메리의 남편으로 흥미롭게 관찰 중이었다.

한창 최저임금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였다. 보고 차 칠수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휴대폰으로 뉴스 기사를 읽던 중이었다.


‘이거 봐요, 로지. 이 기사 읽었어요? 고용주보다 노동자가 수적으로 월등 하니까 기자들도 빨아 주느라 이런 거 써대는 건 알지요? 이제 로지도 이 정도는 알아 듣잖아요.’


칠수는 자신이 사장임에도 직원들에게 반말하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런가요?’


메리의 남편 칠수 역시 한 동안 지켜 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았지만, 나는 왠지 피곤했다.




   퇴사 이후 메리와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내가 회사를 나온 후 몇 명 더 퇴사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의 근황을 챙기는 건 조금 어색한 일이었다. 한 동안 잊고 지내던 메리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이듬 해의 일이었다. 그 사이 나는 휴스톤의 이모 집에서 지내면서 느긋하게 학교를 다녔다.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나이 든 학생들도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우연찮게 들은 메리의 근황은 사뭇 놀라웠다.




   메리는 자신의 아파트 16층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정원수들이 있는 쪽 창으로 떨어진 덕에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던 데다 마침 집에 있던 큰 딸이 신고를 해 구급차가 제법 빨리 도착했다고 한다. 한 동안 입원을 해야 했고 현재는 칠수와 이혼 소송을 진행한다고 했다. 칠수가 어떻게든 이혼은 막아보려고 하고 있지만 메리가 막무가내라는 얘기를, 아직 전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로부터 전해 들었다. 아파트에서 떨어진 것이 투신이었는지 사고였는지 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미투운동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 칠수도 큰 난리를 치른 걸로 봐서는 투신이 아니겠느냐는 게 전 동료의 추측이었다. 오 년 전에, 칠수가 한 여직원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한 정황이 뒤 늦게 밝혀져서 회사가 한 바탕 뒤집어 졌다는 것이었다. 그 직원이 고소를 하는 바람에 온 회사가 알게 됐는데 칠수는 회식 끝나고 술에 취해 있어서 기억도 안 나는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여차 저차 결국 고소는 취하되고 사건은 합의를 보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그 이후에 메리와 칠수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방법은 없지만, 이혼까지 하려는 걸 보면 단단히 틀어진 모양이라고 했다. 이상한 점은 메리는 친권이고 양육권이고 다 필요 없으니 이혼만 하게 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메리 이사님을 봐서는 이혼 하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요, 두 분이 이혼하시면 도대체 회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는 전화를 끊기 전에 한숨을 쉬었다.



 

     나는 메리에 대한 보고서를 이 쯤에서 끝내려고 한다. 소식이 끊겨 더 이상 근황을 알 수 없기도 하고 이제는 더 아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그보다 어쩌면 애초에 한 사람에 대한 보고서 따위를 쓴다는 게 괜한 짓이 아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거의 10년을 알고 지냈으니 그녀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내가 본 것은 나의 시선으로 오염되었고 내가 메리로부터 들은 것은 그녀의 시선으로 오염되었다. 그것들은 서로 뒤 섞여서 아예 모를 것이 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타인이 타인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왜곡이 지뢰처럼 곳곳에 숨어 있어서, 타인을 얘기한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를 지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타인에 비추어 나를 알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반려 하고 싶지 않다. 그녀가 나와 달랐건, 그녀를 나와 다르다고 믿었건 그녀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고 운명의 어떤 요소가 각자의 인생을 다른 형질로 결정 짓는지 알고 싶었다. 저마다의 삶에 불투명한 경계가 있다면 깊이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것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과정이었다.




    돌이켜 보면, 메리를 바라보는 일은 지루하지가 않았다. 그녀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벽을 마주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미덕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지닌 진심의 무게만 달아 잰다면 명문가를 이루는게 무어 어렵겠는가. 그녀가 명문가를 드디어 이루었다며 기뻐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도 같이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메리는 이혼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과 시누이들의 회유와 협박에도 메리가 고집을 꺽지 않자 뉴욕에서 메리의 어머니가 날아 왔다. 그것으로 모든 해프닝은 마무리 되었다. 그녀는 결국 명문가를 이루어내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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