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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Sep 26. 2020

[소설] 반항하는 인간 2

한 시 방향의 여자

명준은 한 시 방향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길을 끄는 인상이었다. 전형적인 미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여자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다. 명준 쪽에서는 남자의 뒷모습만 보였기 때문에 그가 울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얼굴을 감싸 쥔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표정은 석고상과 흡사했다. 그녀의 독특한 인상은 그 때문이었다. 얼굴의 모든 근육이 미동도 하지 않는 듯했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눈길이었다. 그녀의 표정으로부터 아무것도 읽을 수 없어서 등만 보이는 남자가 어떤 연유로 저러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는 사람이에요?"

명준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명준의 시선을 따라 몸을 돌리며 물었다.

"아니요."

명준은 건넌 테이블에서 눈을 거두고 맞은 편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제가 한 질문에 아직 답을 안 하셨어요."

"죄송해요. 어떤 질문이었죠?"

명준은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카페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올 법한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지루했다.

"정교수는 언제쯤 되시는 건지 물어봤어요.”

"그걸 저도 알았으면 좋겠네요."

"..... “

잠깐의 침묵 후에 여자가 다시 물었다.

“오늘 억지로 나오셨나 봐요?"

한숨을 쉬지는 않았지만 명준은 한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는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쪽 시간을 뺏은 것 같네요."

명준은 여자에게 사과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개 씨의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자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먼저 일어날게요. 다음부터는 나오시질 말던가 티를 내질 말던가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여자가 망설임 없이 일어서며 일갈을 했다. 여자로서는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 듯했다. 명준은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자의 뒷모습을 일별 한 후 물이 든 유리컵을 집어 들다가 눈이 마주쳤다.


한 시 방향의 여자가 명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 맞은 편의 쓰러진 자루 같던 남자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명준은 물컵을 입술에 대지 않고 도로 내려놓았다. 여자의 표정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녀가 그를 바라보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로 명준은 여자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명준 너머의 어딘가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돌을 바라볼 때조차 저것보다는 따뜻한 시선이어야 한다고 명준은 생각했다.





'아버지가 좀 보자 신다.'

예상한 대로 명준의 모친이 전화를 걸어왔다. 명준의 부친은 지난해에 회장직을 내려놓고 반 년 쯤 전 대명 시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성을 따라 서 회장이라고 불렸다. 간간이 회사의 간부들이 찾아와서 서 회장의 식사 동무가 되어 주는 것 같았지만, 노부부는 전에 비해 부쩍 한가해진 듯 했다. 마흔 살을 꽉 채운 장남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명분으로 최근 들어 결혼 압박이 강해졌다. 부친의 사업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세 번째 박사학위를 따겠다고 했을 때에도 별 탈 없이 지나갔었다. 명준의 남동생과 여동생이 모두 서 회장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던 탓이 컸다. 그 동생들이 모두 출가를 해 가정을 꾸렸고 자녀들까지 있으니 결혼 문제도 피해 갈 수 있으려니 했는데 그게 그렇지 않은가 보았다. 서 회장이 원하는 건 더 많은 손주들이란 걸 명준은 알고 있었다.

'손주들 데리고 축구팀이라도 만드실 생각이신가봐요?’

명준이 웃어보자고 한 얘기에,

'장손이 든든하게 버텨주어야지 집안이 잘 돌아가는 법이야.'

라고 명준 모친이 답했다. 그게 서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게 참한 아가씨를 왜 그렇게 돌려보냈니?'

명준의 성격을 뻔히 아는 모친이 안쓰러운 마음에 건넨 말이 잔소리가 되었다. 명준은 주말에 찾아가겠다고 모친을 달랜 후 전화를 끊었다. 서울에서 대명 시는 차로 세 시간 거리였다. 다가오는 주말의 원래 계획은 캠핑이었다.


명준에게 굳이 결혼을 안 하겠다거나 하는 결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해진 경로에서 조금만 벗어나 본다는 게 시간이 흐르면서 두 경로 간의 각도가 더 벌어진 것뿐이었다. 서명 기업 장남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싶다는 인식은 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처음 생겼다. 그는 기사가 운전하는 차로 등하교하는 게 재미가 없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재잘거리며 교문을 들어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학교는 걸어 다니겠다고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기사는 대동하지 않았다. 명준의 기억으로는 그게 시작점이었다. 학교를 정하는 문제, 유학을 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도 그는 굳이 부모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서 회장은 그의 삐딱함을 크게 탓하지 않았다. 일을 하지 않은 채로 공부만 하겠다는 명준에게 우리 집안에 학자가 한 명은 있어야지,라고만 하고 말았었다. 결혼에 대해서라면 아직 그 필요를 못 느낀 것 뿐이었지만 서 회장이 여태 고집을 꺾지 않고 있는 단 하나의 문제가 바로 그 결혼이었다. 함경도 출신인 서 회장은 이남에 형제라고는 없는 혈혈단신이었다. 그는 가족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믿었다. 그러던 최근에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명준을 선자리로 내몰았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친을 봐서 나가는 선자리가 명준은 재미가 없었다.






 '이북 음식만 찾으시는 네 아버지도 잘 드신다.'

정통 나폴리 피자를 하는 곳이라면서 명준의 모친이 추천했다. 젊은 시절,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한 모친은 이탈리아 음식에 대해서는 유독 까다로웠는데 마침 마땅한 식당을 찾은 모양이었다. 외식을 하자는 모친의 제안이, 사실은 무거운 식사 분위기에서 장남을 구제해 주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명준은 잘 알고 있었다. 서 회장은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비 부름에 군소리 없이 나타난 명준 덕에 흡족한 듯했다.


전원주택이 즐비한 대명 시에서는 제법 고급스럽다고 할 만한 식당이었다. 검은색 세단이 정차하자 대기하던 웨이터가 차문을 열어 주었다. 명준의 모친은 어느새 이 식당이 단골이 된 모양인지 입구에서부터 반가운 인사가 이어졌다. 거기에서 명준은 그 여자를 다시 보았다. 한 시 방향의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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