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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Jan 08. 2021

인스타그램 중독자의 변명

얼마 전에 직원 한 명과 얘기를 하는 중에, 내가 물었다.

'너는 인스타 안 하니?'

'안 해. 진짜가 아니잖아.'

흠.

'왜 그렇게 생각해?'

'인생의 어두운 부분은 가리고 밝은 면만 보여주는 건 진짜가 아니지.'

'밝은 면도 엄연히 존재하는 진짠데... '

'그건 사실이지만 인생을 그런 식으로 치우쳐서 보는 건 hollow(텅 빈) 한 거지.'

'다들 그 hollow 한 걸 즐기는 걸 수도 있어. 그러자고 약속한 걸 수도 있고.'

'그럼 즐기고 말지 뭐 그렇게들 목숨 걸고들 그러는 건데? 손에서 못 놓잖아.'

'......'


바이러스가 나대는 언택트 시대, SNS 말고는 소통할 방법이 없으니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현실의 나를 보여줄 수 없으니 SNS의 나 말고는 나를 증명할 방법이 없기도 하고. 그럼에도 SNS 중독은 불량식품 중독만큼이나 건강해 보이지가 않는다. SNS에 묶여서 사는 생활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있다. 인스타를 끊어야 한다거나 브런치를 덜 봐야 한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허구한 날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기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전에 SNS가 대중화되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우리가 싸이월드를 시작했을 때, SNS는 삶의 진짜 모습을 왜곡하는 가식적인 소통 매체라는 비판을 심심찮게 들었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의 SNS 활용은 그런 초보적인 비판을 넘어서는 단계에 올라섰다. 오늘날 SNS의 힘은 실제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단계까지 올라와 버렸다. (아, 그래서 결국 우리가 구글의 노예가 되었다는 둥의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지만 여전히 화면으로 보이는 '나와 당신'의 모습은 전체 삶의 지극히 일부라는 것, 그 화면 너머에는 '나와 당신'이 감추고 싶은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은 디폴트 값으로 존재한다. 그건 이제 왜곡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선택'으로, 때로는 '전략'으로 부른다.


우리는 편집점 너머의 일상은 나누지 않기로 약속한다. 남편과의 지리멸렬한 다툼 끝에 이혼 얘기가 오간 것을 인스타에 올리지 않는다. 유머의 소재로 쓸지언정 진지한 태도는 접는다. 와인잔을 멋들어지게 찍어 올리지만 알코올 중독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가린다. 침대를 예쁘게 단장해 포스팅하지만 밤마다 잠에 들기 위해 수면제를 복용하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 사진을 틈날 때마다 공유하지만 식이장애가 있음은 숨긴다.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는 행복한 장면 뒤에는 고작 10분 만에 지쳐 자기 볼일 보러 가겠다는 얄미운 남편의 뒤통수가 있다. 굳이 공유하고 싶지 않다.


우리의 일상은 비루함과 고귀함으로 뒤엉켜 있다. 그 넘치는 허물을 세상 모두와 나누고 싶은 사람은 없고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인생의 밝은 면을 보고 싶다. 나중에 봐도 웃을 수 있는 장면만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게다가 빛나는 순간들만을 선택하는 것은 또 얼마나 엄정하고 섬세한 작업인가 말이다. 그야말로 고도의 전략을 요하는 일이다. 외면하고 싶은 순간은 버리고 아름다운 것들로만 골라 전시하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한 곳이 인스타이다. 이 화면 뒤로 비루한 일상이 숨어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다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애쓰는 중인 것이다. (그걸 모르는 채로 인스타를 즐기고 있다면 그건 좀 위험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오래전에 인스타를 일 년 정도 닫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틈만 나면 그걸 들여다보고 있는 내 모습에 질려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일 년 후 다시 인스타를 열면서, 지난 일 년을 통째로 날린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인스타를 닫은 일 년 동안의 사진은 하나도 남지 않았던 탓이다. 공교롭게도 기억은 날아가버리고 만다.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다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누가 보건 말건 열심히 인스타에 기록을 남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갈수록 사위어 가는 나의 기억력을 위해 그렇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로는 사소한 일도 글감 삼아 남기려고 노력하게 된다. 기억은 사라지고 기록은 남는다.


사실 이렇게까지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인스타가 공허하다느니 가짜라느니 하는 얘기를 들으니 자연스럽게 방어를 하게 된다. 나는 생각보다 인스타에 많이 의지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나의 gym life를 일기처럼 남기고 있고, 각지에 흩어져 사는 나의 몇 안 되는 지인들의 소식도 듣는다. 새로 시작한 water color painting에 대한 정보도 인스타에는 흘러넘치게 많다. 온갖 fashion 매체들을 팔로우하면서 척박한 호찌민의 패션 환경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호찌민에서 구매할 수 없는 것들을 인스타를 통해 정보를 얻어 구매하기도 한다.(얼마 전에는 두 달 전에 주문한  World Map이 네덜란드에서 도착했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내가 팔로잉하는 이들의 다채로운 삶을 들여다보면서 이 밝은 빛 뒤로 어떤 어두움이 있을까를 때로 궁금해하는 것이다. 인간사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이라고 매일매일이 행복할리 없는데 다들 애쓰면서 사니 나도 애를 좀 쓰자,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의 어깨도 내 어깨도 다독여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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