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밀어내기 작전

라이프 코칭 (운전 연수)

검은 야구모자를 쓰고 선글라스까지 쓰고 나니 제법 운전 코치로 어울리는 것 같다. 늦은 오후지만 햇살이 눈부셔 자외선 지수가 높은 선크림과 메이컵 베이스를 손가락으로 듬성 등성 찍어 발랐더니 얼굴이 얼룩덜룩하다. 적적한 오후를 데워주던 미지근한 햇살이 어깨에 가볍게 내려앉으며 우리를 훈훈하게 격려해 준다. 오늘은 초보운전자를 교육시키는 날이라 조수석에 냉큼 들어앉았다. 창문도 반쯤 내려 만일의 사태에 팔을 내밀어 수신호도 할 것이다. 운전 연수중 비상상황이 생기면 촌스럽지만 급한 대로 써먹을 것이다. 비상수단인 클랙션 누르기 등은 초보운전자에게 무리인 것 같아 나름 내놓은 궁여지책이다.


막내딸이 매일 학교에 등교하는 시간은 9시로 코로나 이전보다 30분이나 느려졌다. 그러나 요즘 어찌 된 일인지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싱싱한 아침을 맞이 할 만도 할 나이에 하얀 이불속에서 둥근 산과 깊은 계곡을 만들면서 눈 덮인 산처럼 웅크리고 있다. 늦둥이 막내를 키우기까지 쌓인 노하우도 있어 노련하게 아이를 기를 수 있으려니 했는데 만만치 않다. 잔소리는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지만 뭔가를 해야 하기에 아침 냉수를 침대 옆 협탁에 탁 하고 내려놓는다. 그래도 꿈지럭거리다가 곧이어 울리는 AI 모닝콜 소리를 듣고 서야 마지못해 일어나 후다닥 가방을 싸고 아침도 못 먹고는 몸을 날려 차에 올라타곤 했다. 많이 달라진 나는 "이러다가 학교에 늦으면 어떡하지"라며 안달을 내는 대신 아무 말 없이 그 과정을 바라보기만 하는데 실로 놀라운 발전이다.


세 딸을 기르면서 쌓인 경험, 배워둔 상담이론, 책과 유튜브 등의 자료가 조금은 나를 느슨하게 풀어 주었던 것 같다. 따라서 잔소리 대신 밤바다의 등대처럼 깜빡깜빡 신호를 보내면서 이끌어 주어야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요즘은 온라인 과제를 해결하는 것도 그렇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은 것 같아 아이가 더 딱하고 가엾게 보인다. 도와줄 수도 없고 그보다도 그 마음속에 뭉친 단단한 고민 덩어리를 대화로 풀어 주고 싶은데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는 내성적인 아이라 머리를 써서 수를 내야 했다. 마침 운전연수 필기시험을 패스했고 운전에 관심이 많아 "그래 요거다" 하면서 자칭 운전 연수 코치가 되어 주기로 했다. 이 경험을 함께 쌓으면서 함께 시간을 공유하면 의미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이 쉽지 않은 작전 이름은 '곁에서 함께 있어주기'이다.


아이는 청소년이 되어서도 엄마가 무심하다 싶으면 조만간 티를 낸다. 가끔씩 아이들이 생일카드에 써 주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엄마"라던 소리가 언제 적의 일인데 그것만 믿고 있다 보니 큰아이, 둘째 아이의 청소년기를 놓쳤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그 아이들이 어느새 다 커서 막내만 빼고 내 곁에서 떠나 자립 중이다. 나는 코로나로 직업을 잃고 정부에서 주는 평소 월급의 3분의 2를 EI 급여로 받으며 한가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중이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 오히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고 미래도 계획해보는 황금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날은 멀어진 시간들이라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후회가 된다. 특별히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언제든 불이 붙을 것 같은 후회로 남아있다. 그것들이 다 꺼진 것 같다가도 연기를 내며 불을 내려할 때마다 서리가 내려 들뜬 땅의 흙을 잘근잘근 밟듯이 눌러주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은 찡하고 썰렁하다. 가족 앨범을 보며 지난 시간을 뒤적거리다 보면 그래도 남는 것은 사진에 담긴 이야기이다. 그러니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으리라.



밴쿠버에서 "요즘 우울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길거리에서 물어보면 아마도 반수 이상은 손을 번쩍 들것이다. 1년의 거의 반을 비가 내리는 날씨 아래 살다 보니 그렇다. 요즘은 날씨가 한결 좋아서 비췻빛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엉겨 붙어 환상적인 날씨를 연출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게 겨울이라는 두터운 옷을 한 겹씩 벗어던지며 사뿐히 봄을 맞이 하려는 순간에 더 극심해지는 것이 계절성 우울증이다. 파란 하늘의 구름 따로 마음 따로이다. 마음은 하늘을 향해 있지만 하늘처럼 투명하고 맑지가 못하며 지면에서 햇살에 녹아져서 하늘로 오르는 안개처럼 정체 모르게 음침하고 우울하게 움직인다.


우울감과 우울증은 다른데 아무래도 봄은 움직이기 쉬워 우울증에 걸렸던 사람도 노력해보기 좋은 계절같다. 편한 것이 좋은 것보다 낫다며 '컴포트 존'에서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과는 다르게 계절은 아랑곳하지 않고 각본대로만 내달린다. 우울감은 쉽게 물러가기도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은 생각보다 질기고 끈질겨서 사람에게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울해질 때 밖으로 나가 계절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즉 햇살을 부지런히 쬐고 바람으로 머릿속을 비워 내지 않으면 일생을 따라다닐 수도 있는 아주 고약한 존재여서 주의가 필요하다. 위험하기로 치면 코로나 저리 가라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우울증을 마음치료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산에서 피어오르는 구름 때문에 자주 가보는 언덕


2월 말에 접어들어 날씨가 좋아지면서 보이는 찬란한 하늘의 모습은 정말 화려하고 장관이다. 길을 가다가 멈추어 서게 되고 제자리에 서서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쪽 구름 저쪽 구름 구경에 360도 뱅뱅 돌면서 회전을 하게 되고 어질 어질 하기까지 하다. 이런 하루를 선물 받아 놓고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쓸씀함이고 청승인지 모르겠지만 훨씬 더 찬란한 아름다움 아래에서 오히려 구슬픔 같은 것이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멀어졌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향수병이 시간이 갈수록 더 해가는 것 같다.


태양이 빼꼼히 얼굴을 보여주는 순간에는 환희에 차다가도 잠시 후 회색 구름 속에서 숨어 있으면 또 기분이 알싸 해지는 변덕쟁이 갱년기이다. 그나마 날이 개고 걸어 다니면서 많이 나아졌지만 비타민 D를 먹고 바나나를 먹어대어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의 분비량이 많았던 겨울이었다. 그 겨울덕에 그래도 봄이 뻔히 오는 것을 알면서도 발목을 붙드는 먹먹함, 허무함으로 삶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철학자가 되어 보는 시간을 가졌으니 감사함을 느껴야 마땅하다. 그러나 화사한 봄에도 어두움에 익숙했다가 밝음으로 나가면 잠시 눈을 껌뻑거리면서 적응해야 하듯 주춤한 것이 당연하다 싶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처럼 마음속에 빛을 받아들일 때에도 조리개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조절을 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어른은 그런대로 괜찮을 수 있다지만 요즘 청소년들을 볼 때마다 어쩌나 싶다. '혼자라서 좋다'여서가 아니라 '할 수없이 혼자'가 되어 가는 아이들, 그 심정이 가늠이 잘 안된다. 내가 자랄 때와는 너무도 다른 요즘 아이들의 환경과 조건들, 아무리 무릎을 구부려 눈높이로 다가가려고 해도 통하지 않을 것만 같은 거리감이 있다. 그래도 뭔가 해야지 싶다. 거대하고 무거운 녹슨 기계도 조금씩 기름칠을 하면서 돌려주어야 하듯 시동을 걸리게 하기 위해서는 곁에서 먼저 움직여주어야 한다. 기계도 그렇지만 사람도 혼자서는 꼼짝도 못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쉽지 않은 시기를 겪어내고 있는 막내를 바라보면서 어쩌면 몇 년만 있으면 다 커서 이 노릇도 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섭섭함이 동시에 생긴다.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학 졸업 후면 결혼, 결혼시키면 손주등 끊임없이 뭔가 일이 생기고 그 스토리 속에서 자신들도 함께 있더란다. 인생은 결국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던가, 어떤 스토리를 만드느냐가 다를 뿐 그러므로 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주인공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을 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솔직히 요즘 아이들이 뭐가 아쉬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적도 많다. 최신 스마트폰을 구비하지 않은 아이들이 없는 듯하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 힘든 밴쿠버에서는 부모들이 아침저녁으로 자녀들에게 학교까지 환상적인 픽 드롭 서비스를 리무진 서비스 버금가게 해 준다. 그 외에도 삼시세끼 충실한 식사. 그리고 요즘은 부모들도 잔소리를 예전처럼 하지도 않는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들이 마음껏 누리던 운동장에서의 달음박질, 친구들과의 치고받고 다투면서도 나누던 관계, 그 무엇보다도 기다려지던 점심시간 등, 기본적인 자유가 허락되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학교에서조차 친구들과도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좋아하던 운동을 못한 것도 오래되었다.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온라인 수업만으로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려니 앞도 잘 안 보이고 이런저런 정보에 억눌린 아이의 어깨는 베개를 베고 있을 때라야 그나마 편한 듯해 보인다. 이렇게 막막한 시대에, 손가락 터치 한 번에 무방비 상태에 예고도 없이 SNS로 들어오는 소식은 걸러지지 않은 것들로 '세상은 정말 위험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난해한 곳' 또는 '인싸' 아니면 아무것도 아님이라는 메시지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열심히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닌 이런 불확실한 시대에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들의 어깨가 무거워 보이고 다들 어떻게 이 시기를 보내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게다가 집에서 의사소통까지 안된다면 정말 그 무게는 더할 텐데 말이다.



캐나다에서는 만 16세가 되면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가 있다. 지난해에 막내는 이론 시험에 패스를 했고 이제 1년 안에 L(Learner) 단계에서 N(New Driver)가 되려면 도로에서 연수를 하고 능력(반드시 어른을 동반)을 시험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1년 후에 도로연수 시험에서 시험관에게 합격점을 받으면 그때서야 드디어 N을 떼어내고 제대로 혼자서도 거리에서 운전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갓 이론시험을 본 상태의 아이들이 도로에서 주행을 하면서 연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도로에서 실제 연습을 하고 1년 뒤에 시험관에게 실력을 보여 주는 시스템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여기서는 고등학생이면 준 성인으로 인정을 해 주는 것 같다. 실제로 딸 또래의 아이들, 고2 고3 이 N자를 달고 학교를 통학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스스로 운전도 할 수 있고 파트타임으로 일도 하면서 부모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것을 꺼려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운전은 필수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막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운전면허 시험 패스를 위해 몸을 먼저 움직이면 마음도 따라 움직 일 것이라면서 적극 응원해 주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로 손님이 거의 끊긴 거대한 영화관의 풍경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이곳은 운전면허 시험을 보려는 아이들이 부모 등을 조수석에 대동하고는 운전을 연습하는 곳이기도 하다. 막내는 코로나가 터지기전 이곳에서 팝콘을 파는 일을 했었다. 크고 둥글게 영화관 건물 주변을 20바퀴 이상 돌자 차선 안에서 금을 밟지 않고 다닐 만큼 아이의 운전 실력이 안정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후 아이는 주차 연습을 할 겸 맨홀 뚜껑이 있는 주차장의 선을 타깃으로 하고 앞뒤로 차를 뺐다 끼웠다 하면서 1시간을 더 연습했다. 2시간 이상 지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용기 있게 도전을 하는 모습에 나도 기운이 났다. 참 오랜만에 보는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젠 나름 바퀴의 각도와 운전대와의 상호 작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늘어가는 아이의 자신감은 헤죽 헤죽 웃음으로 바뀌면서 아마도 아이의 자신감에 엑셀을 달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창으로 스치는 손님 없는 영화관의 모습에 우울하기도 했지만 가급적이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제법 센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라색 민소매 드레스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으면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저장하는 여학생들도 있었는데 허전하고 쓸쓸한 영화관의 모습과 대비되었다.


내 경험으로 보아 청소년과 뭔가 하기 전에는 먼저 충분히 뱃속을 채워 놓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빠삭한 빵부스러기를 튀겨 얹은 쓰시롤과 사시 미쓰시 한 접시를 가뿐하게 해 치운 터라 기분이 좋아서 운전이 더 잘되는지도 몰랐다. 지난주에는 배가 고파 그랬는지 나도 저도 신경이 곤두서서 이런저런 말도 많았다. 아마도 쓰시랑 함께 먹은 홍색 생강이 어떤 좋은 작용을 하는지도 몰랐다. 배도 부르니 영혼도 덩달아 가벼워진 듯 가뿐한 시간이었다. 멋진 심리 이론을 요모조모 적어가면서 준비했다가 운전할 때 아이들을 대상으로 풀어놓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던 효과를 볼 수 있는 때도 역시 맛있는 것을 먹는 시간에서였다. 그럴 때에 아이들 입에서는 비밀 같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왔고 빗자루로 쓸어 담듯 한 소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엄마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삶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겨져 나오는 이야기라면 어떤 이야기라도 좋았다.


오늘 막내가 들려준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큰 아이가 운전을 배울 때에는 엄마에게 레슨을 받지 말라고 했다니 마음이 철렁했다. 웬만하면 놀라지도 않는 대범한 아빠에게 받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둘째를 연수시킬 때가 생각이 났다. 슬쩍 앞바퀴가 보도블록을 넘어서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몸을 있는 대로 뒤로 빼고 움츠리면서 "어머 어머"하면서 하이톤으로 소리를 질렀었다. 내 소리에 놀맀을테고 그래서인지 둘째가 운전 할 생각을 안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여기서 살려면 운전이 가장 필수적인 생존 여건이기에 성인에 접어들었다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래 그래, 무조건 목소리 톤을 높이지 말고 잔소리는 조금, 무서운 상황이 와도 아이를 충분히 믿자. 물론 거리로 나가기 전에 충분히 연습은 하자"며 다짐을 했다. 적어도 공포를 전수하지는 말자 라는 생각이었다.


두어 시간 연습을 하다 보니 저녁노을이 먼 서쪽 하늘에 보라 계열의 여러 색상으로 물들어오고 있었다. 핑크 무드 저녁노을이 향기로웠다. 긴장이 풀린 막내도 좁은 영화관을 벗어나 근처 공원으로 가자고 했다. 아이가 준비한 MP3로 담긴 음악소리를 응원삼아 어둠이 서서히 깔리는 지면 위를 향해 헤드라이트를 쏘고 3D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듯이 서서히 출발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은 사슴 같은 짐승들이 자주 뛰어들어 로드킬이 많은 구간으로 50킬로 이내로 달려야 하니 초보 운전자가 선택하기에 좋은 길이다. 오가는 차도 별로 없고 천천히 간다고 해서 치받는 차도 없다. 무엇보다도 차 뒤에 붙여둔 빨간색 L자는 그 누구라 해도 함부로 가까이 오지 말라는 사인으로서 충분하기에 안심이 되었다.


공원에 다다를 때쯤 코너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꾸 뒤를 돌아본다. 도로에서 만나는 자전거는 운전 경력이 많은 나에게도 공포의 대상이다. 언제 비틀거리며 차도로 쓰러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곳의 사이클리스트는 모두들 복장을 제대로 갖추어 입은 날렵한 모습인데 자전거를 못 타므로 마냥 부럽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큰 사거리 신호가 3곳이 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주눅이 들거나 우쭐거리지 않고 과감하게 운전을 하던 막내는 집에 도착해 차고에 주차를 하고는 느슨하게 풀린 팔로 내 목을 안으며 언제나처럼 고맙다는 말을 계속한다. '인사성도 밝은 너도 참을성이 많은 나'도 참 잘했다 싶었다. 일주일 동안 집에서 한 대화보다도 단 2시간에 나눈 대화가 훨씬 더 많고 깊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무엇이든 하도록 궁둥이를 움직여 밖으로 나가주어야 한다. 꼬물락 꼬물락 몸을 움직이다 보면 마음도 움직이는 것을 많이 보았다. 요즘엔 컴퓨터 좌판 위에서 손가락 놀이하는 것 말고는 도무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아이들이 아니던가? 청소년기는 마음을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더군다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운동을 제대로 할 수가 있나,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쇼핑을 할 수가 있나, 아이들은 말로 표현은 못해도 사면이 막힌 무덤 같은 공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무덤 안에 요란한 장비와 요령 좋은 가이더들이 있다고 해도 공간 자체가 주는 답답함을 거스르기는 힘들 것이다. 에너지 레벨이 높은 아이들이 크게 숨 쉬면서 여유 있게 자신들이 뛰어놀만한 공간이 되기엔 턱없이 좁고 작기 때문이다. 진짜 꼼짝도 하기 싫어질 만큼 우울이 깊어지기 전에 움직이는 것에 흥미를 붙여 놓지 않으면 움직임의 매력을 느끼기가 어렵다. 매력이 없는 것에 열정을 더하기는 더욱이 힘들다.


오랜만에 친구들과도 시끄럽게 줌으로 떠들며 놀고 샤워하면서는 노래도 부른다. 내일은 공원에 가서 산책도 하자고 한다. 늘 공원에 갈 때는 할 것이 많다면서 빼더니 말이다.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으려면 자주 나가 주어야 한다. 이제 우선순위는 아이를 데리고 바람을 쐬게 해 주며 시야를 넓혀주는 것이다. 자연이야말로 아무 말도 없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아이를 달래주는 존재이다. 애완견도 산책을 매일 시켜야 하는데 아이야 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 운전을 코칭할 때 엄마로서의 바람도 슬쩍 곁들어 끼워 넣었었다. "있잖아, 세상이 참 넓고 갈 곳도 많단다. 할 것도 많고 말이지. 몇 년만 더 있으면 너도 혼자서 운전하면서 오늘처럼 구름이 멋진 날 어디론가 떠나 보기도 하렴. 내가 네 옆에 앉아서 석양 사진을 찍다니 기분이 참 좋구나. 이런 날도 있다니 말이야" 그랬더니 아이는 "그래요, 그래요" 하며 웃는다. 달콤한 사탕 한 봉지 받은 얼굴이라 후드티로 머리를 감싸고 다니던 쿨한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좋다. 완전히 무장 해제한 모습으로 짓는 웃음이 엄마 마음에 넘실거린다.


오늘 라이프 코칭은 성공이다. 열 번을 하면 몇 번 성공을 하게 될까 말까 해도 이런 작전을 계속해야 한다. 마치 쉽지 않은 작전을 노련하게 수행한 전직 특공대처럼 기술이 쌓이고 용기도 생겨 그래도 막내에게만은 효율적인 코칭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엄마처럼 용감하고 씩씩해야 하는 존재는 따로 없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인내심으로 점점 더 길게 컴퍼스로 큰 원을 그리면서 뭔가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생각을 해 보아야겠다. 아이들을 다 키워 사회에 데뷔를 시키고 나면 이곳의 노년기 사람들처럼 사회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노년을 향한 목표이다. 무엇을 하든 봉사를 하면서 지낼 수 있다면 행복하고 의미 있을 것 같다. 집에 와서 회칠을 한 것 같은 얼굴을 지우면서 다음 작전은 또 무엇으로 할까 생각해 보았다. 흡족한 코칭이었는지 몸이 적당하게 피곤하다. 아침나절에 미리 저녁식사 거리도 준비했겠다 드디어 나만의 달콤한 휴식시간, 빨간 소파에 몸을 푹 담그고는 책을 내리 지칠 줄도 모르고 읽었다. 책의 제목은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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