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망 펜스의 작은 구멍으로 큰 개가 컹컹거리며 비집고 뛰어나올듯한 기세로 짖어댄다. 지나다가 날벼락도 유분수지 작고 하얀 개도 반사적으로 깨갱거렸다. 자기 개의 부서지는듯한 소리에 놀란 주인도 엉겁결에 펜스 안의 쉐퍼드에 하지 못한 화풀이를 해댄다. 중국말인 듯싶은데 잠자코 있으라는 혼냄임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놀라서 새가슴이 되었을 텐데 엎친데 겹친 격으로 그렇게 마구 나무라다니 혼날 사람, 아니 개는 "걔가 아니예요" 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으르렁 거리면서 장난스럽게 짖어대던 큰 개는 집안으로 튀어 들어가 버렸고 주인의 폭풍 같은 야단을 맞던 작고 메마른 강아지는 슬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돌아보니 조금씩 발자국을 앞으로 내딛으면서 주인의 큰 보폭에 맞추어 간신히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서, 넌 지금 부들부들 떨릴텐데 말이야" 지나면서 곁 눈초리로 주인을 때려주고 싶었다. 어쩔 수가 없구나. 남의 개줄에 매인 너를 내가 어쩌라고... 모른 체하면서 걸었는데 지금도 생각이 난다. 너는 그래도 어제저녁에는 편안하게 잘 수 있었을까? 너를 포근하게 안아주는'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겠지라며너 아닌 나를 위한 위로를 해본다.
#2
운동장을 도는데 한쪽 주차장에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중국 노인 십여 명이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 그 동네를 떠난 지 3년 되었다. 그때 나는 한국인이 많은 동네라고 소문을 듣고 그 동네를 찾았었다. 그러나 한국인을 사귀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멀리 있으면 가까워지고 가까이 있으면 멀어지는 상대를 서로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둥이를 둔 내가 스스로를 소외시켰던 것 같다. 내 또래의 엄마들은 펄펄 날아다니는 것 같아 함께 날수가 없었고 막내 딸의 친구 엄마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풍덩 그들만의 리그에 뛰어들지도 못하고 쭈뼛거렸다. 이래저래 여기서도 저기서도 착착 끼어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두어 군데 정을 붙인 조직이 있었다. 한 군데는 멀티 컬처 엄마들 모임이었다. 중국인, 독일인, 러시아 등, 이민자로 정착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우리끼리의 정체성에 대해 공감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 파티 등 가끔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포트락 파티를 하곤 했다. 서로 다른 음식들, 집안의 분위기 등 그때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풍부한 바디 랭귀지로 아무런 문제 없이 소통했다.
두 번째는 1년에 한 번 동네 페스티벌을 위해 급조해서 만든 한인 음식 봉사회였다. 인기가 많은 불고기와 돼지 제육볶음 등을 만들어 팔아 수익을 학교에 도네이션 하면 뭔가 지역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었다는 마음에 뿌듯했다.그때가 그래도 한국 엄마들과 동네를 위해 열정적으로 봉사하면서 보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말 솜씨는 어디 가도 빛을 발한다. 아는 지인을 통해 들어보니 이 동네로 들어오는 중국인들의 수가 더 늘어서 요즘에는 오픈 하우스 때 거의 모든 사람이 중국인이라고 한다. 아이가 오전은 학교 오후는 집에서 줌 수업을 해서 와서 아예 거기서 산책을 하며 기다리는데 진짜 거의 모두가 중국인이다. 그리고 어쩜 그렇게 잘 단합을 하고 사는지 행복해 보인다. 남자 노인들은 손자들을 데리고 놀고 여자 노인들은 오가는 사람의 눈에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라도 '차이'라는 체조를 하거나 단체로 춤도 저렇게 춘다. 캐나다에 사는데 여기가 어디인가 가끔 둘러보게 된다. 으슬으슬 축축한 공기로 목덜미가 서늘한김에 괜스레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저기 지금 뭐해요?" 누군가를 불러낼 참이었다. 그 동네 가까이 사는 아는 분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텅 빈 주차장에서 보니엠의 ' Rivers of Barbylon' 또 알지 못할 중국노래 메들리를 들으며 시린 무릎에 담요를 두르고 아이가 올 때까지 차 안에서 책을 읽었다.아직은 춥다.
#3
아이가다니는 세컨더리 학교(7-12학년)에서 메일이 왔다. 코로나 이후 4번째 메일인데 코로나가 학교 안에서 발생했는데 만약 내 아이가 감염자와 컨택이 되었다면 24-48시간 안에 연락을 할 테니 동요하지 말고 그냥 학교에 등교하라는 내용이었다. 학교에서 있는 시간은 아침 9시부터 11시 15분까지로 짧다. 집에 와서 오후에 줌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좀 더 어린 학년들은 학교에서 9시에서 3시까지 쭉 수업을 하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감염될 확률이 많을 것이다. 감염되었다가 다시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은 심적으로 많이 힘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대로 학교는 돌아가고 있다. 내 주변에도 코로나 검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 걸렸었다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 백신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가을쯤에야 접종된다는 소식도 들었다. 점점 뚜벅뚜벅 다가오는 코로나 발자국 소리, 극성을 떨며 비타민 챙겨 먹고 물건도 좀 더 사놓고 하던 조바심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그렇게 코로나 일상에 마지못해 적응되고 있는 것 같다. 휴지는 거의 다 떨어져 내일모레 하는데도 이렇게 마음을 푹 놓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어딜 가나 마스크는 이제 거의 다 쓰고 다니는 캐나다 사람들이다. 이젠 코로나가 없는 일상이 어땠었더라 하는 생각까지 든다. 뚜벅뚜벅 그저 살아갈 수밖에 없다. 코로나보다 조금 더 빨리 걸으면 따라 잡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