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시간

겨울 발자국 (Surrey Bend Park 1)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보름쯤 되었을까? 겨울이 가려는 것 같아서 살뜰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때 그 찬스를 놓치지 않은 것이 옳았다. 그때 이후로 눈이 내리지 않았다. 반짝이는 시간을 알고 그 시간을 누린다는 것 그것이 바로 꿈같은 현실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침마다 아이 등교 때문에 매일 드르는 내가 살던 옛 동네에 눈이 쌓여 있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는 눈이 오지 않았는데 조금 더 산에 가깝고 강에 가까워 그런지 이 동네는 예전에도 자주 그랬었다. 산과 구름 전망이 좋은 언덕에서 구름을 먼저 관람했다. 그러나 남의 집 옆에서 한참을 있을 수는 없어서 근처에 있는 공원에도 눈이 아직 있으려니 기대하고 차 머리를 쌩 돌려 강가를 향해 달렸다. 겨울이 꽁무니를 뺄 것이 뻔한데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고 나면 밴쿠버의 북쪽에 위치한 산에서는 마치 핵폭탄이 터질 때 만들어지는 것 같은 버섯구름이 폭발적으로 피어오른다. 그래서인지 구름이 없는 하늘은 마치 연기자 없는 빈 무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름이 각각의 캐릭터를 가지고 하늘에서 무대 연출을 하는 날이면 정신을 못 차리고 바라보는데 관람 티켓을 낸 적도 없는데 공으로 이런 스펙터클한 공연을 볼 수 있다니 감지 덕지가 아닐 수 없다. 영상으로 머리속에 남겨진 풍경은 따뜻한 혈액을 타고 심장속으로 내려와 살포시 들어앉는다. 입으로 먹는 것만이 에너지로 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활기찬 생명들을 바라보면서 얻은 힘도 힐링파워가 되어 나의 마음을 다스린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하늘이 파란 날이 되면 자연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날 찾은 Surrey Bend Park에서 보이는 Fraser River는 밴쿠버의 각 도시를 관통하며 흐르는데 앨버타주의 록키 산맥에서부터 흘러내린 빙하 녹은 물이 모인 것이다. 여기까지 흘러 오면서 스쳐 지나갔을 수많은 자연의 퇴적물들을 물빛에 담아와서 그런지 진하고 탁하다. 산과 계곡을 타고 들을 건너오면서 산산이 부서지고 깨졌을 것이다. 그 강가에 서면 머릿속에 있던 별별 생각들이 후다닥 튀어나가 퐁당퐁당 강물에 투신해 버리는 것 같다. 억지로 밀어내려 해도 안되던 허망한 욕심들이 제 발로 나가고 난 자리에 깊은숨을 내쉬며 산소를 빨아들여 채워둔다. 수천 종의 나무와 풀이 만들어준 산소가 온몸의 숨구멍을 통해 미세혈관이 뻗쳐져 있는 그 어디까지라도 도달할 것 같다.



이곳은 원래 늪지대였는데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길을 내고 작은 나무들을 좀 더 심은 것 같다. 갈대 종류 같은 수풀들이 거칠게 분포하고 있다. Fraser River을 따라 길게 늘어선 Cotton Wood Tree는 늦봄이 되면 이 일대를 온통 하얀색 눈밭처럼 만들어 버린다고 한다. 하얀 꽃송이들이 공간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지나던 할머니가 알려 준 적이 있다. 밴쿠버는 침엽수림이 많아서 이렇게 활엽수 나무가 많은 곳이 좋다. 새들은 침엽수림보다 활엽수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우산처럼 의지하던 나뭇잎들이 다 떨어져 버리는 겨울에는 그 작은 몸을 어디에 두고 지냈었는지 물어보면 새들이 대답해 줄까 싶다. 아직 곰들이 깨어나지는 않았겠지만 숲에 혼자 들어가려면 주금은 주춤거리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방울을 발목에 달고 미리 곰에게 언질을 준다. 멀리 있기는 했지만 곰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다시 곰을 만나면 어떤 방향으로 튈까 고민하게 된다.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갈까, 아니면 곰보다 더 으르렁 거리면서 몸집이 큰 동물처럼 연기를 할까라는 대부분 부질없는 생각들일뿐이다. 언젠가는 아무런 생각 없이 숲에 들어섰다가 갑자기 두려워져서 손에 든 열쇠고리를 방울처럼 내내 흔들면서 걸었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무척 민망했다.



눈이 얇게 내린 공원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길에 발자국을 찍으며 나아갔다. 광활한 공간에 이르니 온갖 번잡하던 일상의 생각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이렇게 넓은 곳에서 이런 공간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하는 마음이 배어 나온다. 한일도 없이 거저 받은 은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화창한 봄날의 기쁨을 풍성히 맛보게 되는 날이 있으리라 믿고 기다리며 지난겨울 내내 올린 기도가 이제는 응답이 오려나 기대하는 마음이 든다. 인내는 정말 길고도 쓰다. 언제까지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할까 수없이 물어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나처럼 내 눈앞의 자연도 비 오고 바람 불고 추웠던 지난겨울 동안 산고를 겪으면서 얼마나 기진맥진했을까 싶었다. 이제 곧 이 찬란한 봄날의 기쁨의 기운이 더 느껴지면 겨우내 움츠렸던 작은 새들도 모두 나와 슬퍼한다 해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 따위는 뒤로 하고 노래를 부르며 찬양곡을 부를 것이다. 기쁠 때 기뻐할 줄 아는 작은 새가 차라리 부러워 조용히 새들의 노랫소리를 따라 해 본다. 어떻게 노래를 부르면 되는지 묻고 싶다. 노래 부르는 것을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으므로...


눈앞에 보이는 존귀한 생명체들이 고요함 속에 잠자고 있는 이곳에 오면 온갖 물리적인 세계의 허망한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에야 그것들로부터 멀어지면서 이 자연과 한패 거리가 된다. 이런 자연이 아니면 누가 인사치레도 없이 아무 때나 들쑥 들러 온갖 시름이나 내려놓고 떠나는 그런 맹랑한 방문자를 반겨줄까 싶다. 꿈을 꾸라고 꿈을 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세상에서 이야기하는데 여기에 다다르고 보니 여기가 꿈속 같다. 이 푸른 하늘이, 저 구름이 바로 꿈속의 것들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꿈이 되어 우리를 반겨준다는 것일까? 언제 와도 반겨주는 너그러움에 비루한 이름표를 가슴팍에서 떼어 놓고 이들과 하나가 되어 어울린다. 이런 것이 소속감이라는 것일까? 마음에 찾아드는 평안함에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비로소 거울처럼 투명한 하늘에 비추어진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겨우내 잉태되었던 새 생명이 기지개 켜는 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 같아 귀를 토끼처럼 종끗하고 독수리처럼 눈도 크게 떠본다. 비로소 이 텅 빈 공간의 자연 속에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나를 향한 존귀하고 거룩한 뜻을 알아차리려 눈을 껌뻑거리며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뒤로 돌아서면 어두운 하늘 다시 돌아서면 밝은 하늘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거리낌도 없이 제일 먼저 발자국을 남기려고 폴싹거렸었다. 그렇게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찍어 놓은 발자국들이 내가 한일중에서 최고 잘한 일처럼 느껴졌었다.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그리 중요했었나 보다. 눈 위의 발자국들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듯 인생살이에서 애써 얻은 것들도 결국은 나의 존재가 사라지면 다 없어지고 마는 것들이다. 그러니 나라는 존재가 가는 곳과 생각하는 것이 만나는 순간이야말로 내게 제일 소중한 것이다. 세상 이치가 바로 이 자연 속에 담겨있고 찾아가기만 하면 수업료도 없이 알려주니 이런 스승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며 안달을 떨다가도 자연에서는 이들의 위로가 풍성하게 차고도 넘친다.


한해에 봄도 여름도 가을도 한 번씩 밖에 안 오는데 왜 겨울은 두 번에 걸쳐져 있을까? 겨울을 반토막 내어서 이해와 저해로 나눈 연유는 무엇일까? 태초이래 거대하고 원대한 플랜 아래 사계절도 봄과 여름과 가을 겨울로 연이어 흐른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각 계절에 몸을 담그고 이런저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도우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아래에서 나는 빚진 자로서 그 은혜를 감당하기 힘들어 몸 둘 바를 모를 때가 많다.


눈을 밟고 먼저 길을 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가 본다. 강아지 한 마리의 발자국이 주인을 따라 촐랑촐랑거리며 귀엽게 찍혀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한 남성이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제법 덩치가 큰 개와 앞장서서 걷고 있다. 아마도 성질이 조금은 사나운 개를 데리고 나와 누군가를 물까 봐 염려가 되는 모양이다. 이 좋은 날 그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서 주춤주춤 천천히 거리를 두며 걸었다. 조금 더 가니 갈림길에서 개의 발자국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천방지축 수풀 속의 작은 동물들을 쫓아다닐 모습이 상상이 되어 입꼬리가 올라간다.


똑바로 걸어가려고 애쓴 발자국들이 꼭꼭 눌려 눈 위에 찍혀 있다. 그에게 있었을 수많은 사연들은 무엇이었을까? 걷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발자국이다. 고단한 삶의 무게가 그대로 내려앉아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도 또 세상을 떠나갈 때도 제뜻으로 오고 간 적이 없다. 내 삶이 내 뜻대로가 아니라는 사실에 순응하는 것이 이제는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순간순간이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길다면 길겠지만 우리 인생은 영원의 세상에 비하면 비교할 수도 없이 짧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을 향해 잠시 거쳐가는 꿈길에서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평온하게 살아가고 싶다. 발자국을 따라 꿈길을 걷다 보니 나랑 함께 걸어가고 있는 가족들과 다시 이 길을 걷고 싶어 진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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