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보다 젊은 낭만적 여름

Vancouver Golden Ears & O ave Border


밤새 비가 추루릅 내렸고 기분 좋은 회색 하늘이 너르게 펼쳐진 아침, 아니나 다를까 집에 있으면 좀이 쑤시는지 어디론가 갈 궁리를 하는 낭만 부부다. 낭만 부부라고 별명 지은 것은 앞으로 더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붙여본 것이다.



비가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우리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그토록 바라던 비도 오는데 아예 산에 가서 비를 맞아 보자며 약속이나 한 듯 집을 나섰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밴쿠버에 있는 공원 Golden Ears 였다. 다양한 등산 루트 중 Evans Peak Trail을 선택했다. Golden Year Trail은 12시간 코스라는데 그 외에도 트레일이 많다. 우리는 무늬만 등산객인지라 보통 두세 시간 이내로 등산을 한다. 이곳은 두 번째로 비교적 수월한 코스라 앞으로도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올라가는데 40분, 쉬는데 20분, 내려올 때는 1시간이 걸렸다. 경사진 곳을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든 것 같다. 올라갈 때는 스틱을 꽂으며 네발로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는 미끄러질까 봐 조심하느라 더 힘든 것 같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주시하면서도 눈은 연실 초록 식물들이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각기 연회장을 방불케 하며 늘어선 모습을 바라보느라 바쁘다. 거기에 사진까지 찍으려니 얼마나 바쁘던지, "에잇 사진을 찍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또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나댄다.


딸아이가 진정 그 시간을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사진을 찍는 것이 목적인지 모르겠다고 한 것을 기억하면서도 요 장면, 저 장면을 놓치기가 싫어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한다. 남편은 포기하고 저만치 가버리고 잠시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머리카락이 쭈뼛하며 부리나케 앞으로 달려보기도 한다.



아무튼 이래저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초록 자연의 품은 따스했다. 지금까지 눈 안에서 넘실거리는 초록색의 향연 덕에 잠들기가 싫다. 손바닥 넓게 펼쳐 들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기다리던 작은 단풍 이파리들이 회색 하늘을 받치고 있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바람도 안 부는 데 혼자서 흔들거리던 뾰족하게 생긴 그 나무까지 다 내 눈동자 안에 아롱 새겨져 있다.


어릴 적 엄마가 우리를 깨울 때 물을 손가락에 튕겨 깨우곤 했었다. 가끔 굵은 빗방울이 나무에 맺혔다가 내 이마에 떨어지곤 했다. 그 순간 나는 엄마가 내게 뿌리던 물방울이 생각났다. 아마도 그 물방울을 맞고 싶어 숲으로 들어갔던 것이었나 보다. Mother Nature는 잠시라도 품어주려 한다. 산은 우뚝 선 보호자의 모습으로 밴쿠버의 한쪽 방향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마치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집으로 도착하니 늦잠 자서 우리랑 함께 산에 가지 못한 딸아이가 나가고 싶다고 해서 2차로 드라이브를 갔다. 이번엔 미국과의 국경지대 0 ave였다. 운전 연수를 해 주기에는 딱 좋았다. 가면서 엄마의 음악을 듣고 싶다는데 생각이 나는 곡이 없었다. 생각끝에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를 들었다. 이수영의 리메이크 곡이었는데 어깨가 들썩했다. 취미로 댄서 활동을 했던 딸아이에게 안무를 짜 달라고 했다. 언젠가 써니를 보면서 느꼈던 낭만이 생각난 것이다.



0 Ave 국경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미국 여자와 캐나다 여자의 햇살에 부푼 표정에서 평안함를 느꼈다. 살벌한 국경에서 마주 보고 앉아있는데 저리 평화롭다. 한 여자는 빛바랜 나무 울타리 위에 앉아 내려다보고 또 한 여자는 올려다 본다. 갈 때마다 이곳 저곳에서 캐나디안과 미국인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본다. 흔한 철조망도 없는 길을 동물들은 마구 넘어 다니지만 사람은 절대 따라 하면 안 된다.


길 오른쪽이 미국이다.


오렌지색 태양이 얼굴에 조명을 비추는 저녁나절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향수병이 달래지는 것을 느꼈다. 한국이 보고 싶을 때는 그렇게 다짜고짜 드라이브를 간다.


아침엔 산, 저녁때엔 들, 오늘은 산과 들을 쏘다니며 하늘에 걸린 구름처럼 뽀얗던 기억나지도 않는 옛날의 꿈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태양을 가리려 내린 차 속 거울에 보이던 나의 낯선 모습이 햇살에 뚜렷하다. 세월은 가고 그 세월 속의 나는 잊어야 하며 지금의 나로 살아가야 한다. 낭만은 지나간 것을 추억하기보다 지금의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드라이브를 가면 그 낭만이 따라온다.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온다. 따뜻한 저녁노을을 맞이하며 보낸 시간이었다.


오늘도 내일보다 젊은 나의 여름날을 만났다.




함께 한 음악

https://www.youtube.com/watch?v=lpjN7r9Nx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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