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가족의 일상

코로나 검사 일기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어떻게 해"

막내가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내방으로 들어왔다.

고등학교 2학년인 막내는 현장실습 교과목(Work Experience)의 봉사시간인 90시간을 맞추기 위해 약국에서 방과 후 월 수 금 3일 동안 3시간씩 일하고 있는데 주인 약사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3주 전에 그 약국의 직원들 모두 코로나 1차 접종을 마친 상태인데도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니 황당했다. 막내는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고 우리 부부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언제쯤 코로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까 염려했었는데 현실로 다가온 것이었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가 누구를 만났던가'였다. 현재 나는 코로나로 직장을 떠난 상태이기 때문에 그다지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며칠 전 양로원에서 일하는 분과 산책을 했고 그분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잠시 핸드폰을 건넨 것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남편은 비교적 사람을 만나지 않는 직업이라 괜찮았지만 더 큰 문제는 막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였다. '만약'이라며 생각을 해보니 그 여파를 아이가 감당할까 싶어 염려가 커졌다.




코로나 검사를 한 후 결과를 알려주겠노라고 학교에 메일을 쓰고 우리 가족이 컨택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 놓았다. 그 부분이 가장 힘겨웠다.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온 다음에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했지만 원리 원칙을 배우며 자란 막내는 한사코 검사 결과에 상관없이 먼저 이야기를 해 두어야 한다고 했다. 일요일 저녁은 코로나 검사가 끝난 시간이라 월요일 아침 9시에 부리나케 코로나 검사 장소로 갔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아뿔싸, 예약이 없으면 안 된다고 퇴자를 맞았다. 그 점을 미리 파악하지 못해 속이 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우리가 갔던 장소로 다행하게도 예약이 되었다.


예약 시간 30분 전인 10시 45분경에 도착했고 12시쯤 되니 우리들의 차례가 되었다. 막내가 코비드 확진자와 함께 일했었다는 말에 코를 통한 채취 방법으로 하겠다고 했다. 코비드 검사를 받은 분들이 코가 상당히 아팠다고 해서 겁이 났었는데 그저 10초간 약간 찌릿찌릿하고 간질간질했다. 반면에 같은 시간에 예약했지만 다른 차량을 이용했던 남편은 무척 아팠다고 한다. 그 남자 검사자가 면봉으로 10초간 헤집더란다. 나와 같은 차에 탔던 막내도 차량의 뒷 창문을 통해 나를 검사했던 분에게 받았는데 코가 상당히 불편했다고 한다. 내가 둔감해졌나 싶었다.


되도록 빠르게 결과를 받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막내가 방에서 식사를 하게 하고 아이의 화장실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액체 세정제로 방문 고리 등을 닦았다. 뭔가 하기엔 늦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감염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막내는 화장실로 이동할 때에도 마스크를 쓰고 얼굴 가리개도 썼다. 차로 이동할 때에 보니 투명 얼굴 가리개에 김이 서려 아이가 더 불쌍하고 가엾게 보였지만 덤덤한 척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을 통해서 느낀 것은 가족은 공동운명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가 걸리더라도 함께 할 운명의 집단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 간의 돈독한 가족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말 한마디라도 막내에게 상처가 되지 말게 하자고 남편에게 슬그머니 말했다. 우리가 코비드 검사를 받을 수 밖에 한 약사를 원망하지도 못했다. 아마도 그분은 약국 문을 한동안 닫아야 하니 더 속상할 것이다. 딸은 평소 하던 대로 근무하는 3시간 동안 수시로 손을 닦았다고 했다. 아이를 픽업할 때에도 차에 들어오자마자 세정제를 듬뿍 손에 뿌려주던 생각이 났는데 그런 것들이 한가닥 희망이었다. 지나 놓고 보니 코비드 확진자와 함께 있었어도 방역 수칙을 잘 따르면 살길이 있다.


코로나 검사 결과를 받기 전까지 막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새벽 한시쯤 되어 메시지가 왔다며 다시 내방으로 살그머니 들어왔다. 나에게도 메세지가 와 있었다. 남편에게는 다음날 오후에 왔다. 아이와 탑승했던 내 차를 앞으로 빼주던데 홀로 타고 간 남편보다 우리가 먼저 결과를 받은 것이다. 우리 가족 모두 음성이었다.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게 이번 사태가 해결된 것이다. 만약에 코비드 확진이 되었더라며 한참 예민한 막내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위기에 접할수록 더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라 기적 그 자체인 것이다. 남편은 그렇게도 하루만 일을 쉬면 좋겠다고 하더니 쉬지 않고 밀린 가든 일을 했다. 막내도 기말고사 시험 준비를 해오던 대로 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글을 쓴다는 것이 힘들고 벅찬 상황에서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평소와 다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아이는 오가면서 열린 방문 사이로 나를 힐끔힐끔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은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은 코로나 따위를 충분히 잊을 수 있었다. 불안에 빠지면 일파만파로 안 좋은 생각을 부풀리던 습관이 글을 쓰면서 치유될 것 같았다.




검사할 때 죽 늘어서 있던 차량들, 그리고 그 안에서 기다리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 모두 잘 견뎌주기를 기원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함께 겪는 위기의 코로나 시대이다. 생전 겪어 보지 않은 상황에 심리적인 불안과 외로움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은 가정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이번 일로 코로나가 바로 내 코앞에까지 왔다는 것을 알았다. 결코 남의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가족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다. 언제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요즘 같은 때다 보니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을 하루 종일 되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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