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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봄
편지 왔어요.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Apr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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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편지를 쓰려니
할 말은 많지만
지우고 또 고치며
짧게 씁니다.
요즘 부쩍 지치고 힘들어하는 당신이
'푸른 하늘 흰구름 보며 쉬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할 때
헐크처럼 앞으로 내 달리기만
했던
당신이었기에
정말 힘들구나 싶네요.
어릴 적 뒷동산에 올라가 밤이 되도록
개와
둘이서 있기를 좋아했던 당신
마음 둘 곳이 없었던 당신
우리가 함께 할 동안에도
뭐든 혼자서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하려 했기에
그 시간이 못 견디게 힘들었는데
그랬던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왔네요.
부부란 게임을 하듯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데
내가 던진 공이 되돌아오지 않아
한없이 기다릴 때도
있었죠.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날아온
공을
잡지를 못해
손에서 튕겨 나가곤 했었죠.
우리는 어떻게, 얼마만큼 서로에게
주어야 하는지 몰랐던
사람들이었네요.
우리들의 마음에 계량컵은 없었죠.
남자의 영혼엔 자유라는 날개가 달렸다던데
어깨에 집 몰 게이지를 얹고 한결같이
달려야만
할 때 자유롭고 싶던 당신은 울고 싶지 않았나요.
당신의 눈물을 본 적이 없네요.
알래스카와 히말라야처럼
추운 곳을 가고 싶은 당신
하와이와 칸쿤처럼 따뜻한 곳이 좋은 나
당신의 나의 온도차이
그렇게 다른 나와 당신의 문지방에 앉아서 우리 아이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요.
그래도 살기 위해서 좋은 것만 추억하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당신도 나도
솔직해지는군요.
당신은 시인처럼
나는 전사처럼...
숲에서
당신은
뛰고 나는 걷네요.
손잡고 함께 걷는
사람들도 많지만
당신이 목적지에 먼저 도착해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나를 기다리는 모습도
괜찮더군요.
숲에는
곧게 자라는 나무도 있지만
비틀어지고 굽어지면서
자라는
나무도
많네요.
똑바르게 잘 큰 나무는
누군가의 집이 되어
주겠지만
숲에 남아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늙어 가고 싶어요.
큰 나무가 되고 싶어서
가지를 뻗고
뿌리도 더 깊게 내리려 몸부림을 쳤는데
숲에 나무는 전부가
다 아름다워요.
모두가 다 언젠가는 고목이 되고 썩어져 거름이 되고
흙으로 돌아가겠죠.
우리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우리가 알 수는 없기에
당신과 나 지금을 잘 살아야 해요.
이렇게라는 '프레임'에 넣어놓고
'라벨'까지 달아 꼼짝달싹 못하게 했던 당신과 나의 시간을 뒤돌아봅니다.
어린애처럼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겪고 견디면서
그래도
여기까지 왔고
이제 알만한데
우리의 청춘은 멀어졌네요.
당신과 내가 광야를 건너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지금을 나눌 수 있었을까
삶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싶습니다.
봄맞이 캠핑장에서 장작불을 때던
불멍의
순간이 우리들의 봄입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 기뻐요.
내일과 오늘이 중요한 당신과
나를 위해
무릎을 꿇고 우리들의 주권자 앞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우리들의 어제와 오늘과 미래를 컨트롤하시는 분께
당신과 내가 건너온
광야에서 함께 동행해 주셨음을 감사드리는 기도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은 당신
아끼고 절약해서
당신이 조금 더 쉴 수 있기를
그런 하루가 빨리 오게
하고 싶어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우리들의 가장이 되어 주어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비스듬히 서서도 이끼가 끼고도 실아가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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