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은 스타였다. 스타가 뭔지도 모르면서 남들은 대통령, 박사를 말할 때 나는 스타가 되고 싶었다. 누가 물어 본적도 없이 사라진 나의 꿈이어서 그런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무대에서 박수를 받는 그런 꿈을 꾸곤 했다. 지금도 그런 버릇 때문인지 시사나 경제 또는 정치보다는 문화, 연예소식을 제일 먼저 본다. 내가 못해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엿본다. 그 허무맹랑한 꿈은 그런 무대에 한 번도 서 보지 않았기에 더 컸던 것 같다. 단 한 번이라도 서 보았더라면 스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을 텐데 말이다.
왜 스타가 되고 싶었을까? 나의 아버지는 나보다 더 스타가 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아빠는 아마도 연예계 변두리 지역에서 머물던 젊었던 시절, 당대 유명하다는 사람들과 이야기 정도는 나누셨을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서 나도 그런 사람들이 될 것 같았다. 잘 생기고 노래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목소리도 좋으셨던 아버지는 젊은 30대 후반의 나이에 강원도 시골로 낙향하셨다. 젊고 아름다웠던 그 청춘은 절망하기만 했다. 나는 절망하는 아버지 때문에 더 스타가 되어야겠다며 이를 갈았다. 서울에서 성공한 친구들이 내려오면 "에델바이스'나 '나의 조국'을 부르게 하면서 나와 동생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자식들을 비장의 무기처럼 내놓으셨다. 그랬던 아빠 때문에 아직도 나는 서슬이 퍼렇다.
시골 학교에선 상장을 많이 받았다. 그러니 적어도 대학에만 가면 성공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점 점 갈수록 내 가족들이 나에게 쏘던 후광은 빛을 잃었고 내가 가족들의 희망이 되기엔 보잘것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마치 금방이라도 성공할 것처럼 지금까지 진실하게 열심히도 살았다. '그렇게 사라져 버릴 수는 없어. 아빠처럼' 그런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의 내게 스타가 된다는 것은 '돈을 잘 번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 같다. 성공하면 나와 나의 형제자매들을 모두 궁핍과 비굴함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 같았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 셋을 연달아 기르면서 나는 내가 내 인생의 스타라는 사실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내 아이들이 스타로 자라는 동안 나는 로드 매니저로 살면서도 그게 그렇게 좋았다. 그땐 젊었고 그 젊음이 무한대로 있을 것처럼 느껴졌었나 보다. 그때 나는 엄마는 아이보다 예쁘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가장 아름다웠던 30대와 40대가 물 흐르듯이 지나갔다. 그래도 교회 갈 때는 제대로 차려 입고 나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를 보여준 것 같다. 내 존재에 대한 특별한 감사와 사랑을 느끼던 그 시간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빈 둥지 증후군이 느껴지는 요즘 나를 바라본다. 가끔 거울이 "너 누구냐"하면서 화들짝 놀란다. 나는 다시 내 무대의 스타가 될 수 있을까?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나 했을 것 같은 경험, 고통과 같은 평범한 이야기를 가지고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에 대해 배운 적도 책도 많이 읽지 않은 내가 이제 시작해도 될까 싶다. 내 아이들에게는 그토록 많은 그림책을 구연 하면서까지 읽어 주었는데 내게 살이 되고 피가 된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요즘 나에게 심심찮게 찾아오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내 삶의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나와 가족 말고 '사회에 대해 내가 무엇을 했는가', '또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글 속에서는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다. Wounded Healer라는 말이 있듯이 상처 받은 영혼이 더 치유하는 삶에 적극적이다. 부족하지만 돕는 인생을 살고 싶다.
앞으로 읽어야 할 글이 산더미 같아서 그만큼 호기심이 늘었다. 호기심이 있다면 충분히 뭐든 새로 시작해 볼 수 있다. 내게 꿈이라는 것을 꾸게 한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새벽이면 원고지에 글을 쓰다가 구겨서 버리곤 했다. 아버지와 함께 사라진 아버지의 꿈을 찾고 싶다. 어릴 적 가졌던 허황된 꿈은 나에게 죄책감만 남겼는데 이젠 책임감을 가지고 뭔가 하고 싶다.
서슬이 퍼렇게 살다 보니 목이 너무 곧아졌다. 이젠 어릴 때 꿈처럼 노래하듯 춤을 추듯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유일하고 창조적인 인간으로서의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글쓰기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