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Kia Soul이다. 나는 2013 생이고 Gray 컬러다. R은 처음 만날 날부터 내 이름이 Soul이라서 좋다고 했다. 내 앉은키도 크고 속도 널찍해서 답답하지 않다고 했다. R은 나와 레이서처럼 달리며 4년을 함께 했다.
나는 온 세상을 끌어들일 수 있는 크고 투명한 창문을 가졌다. 사시사철 변하는 계절을 파노라마로 보여 준다. R은 음악과 정겨운 패널들이 등장하는 106.5 FM 채널을 좋아한다. 나는 계절과 사람을 R에게 보여주며 어디를 가자고 해도 군소리 없이 가 준다. 나는 체구가 작은 편이지만 튼튼하고 싹싹하다. 눈길은 싫어하지만 비가 많이 오는 날에도 끄떡없다. 철철 흘러내리는 빗물은 양팔을 놀려 부지런히 닦아낸다. 바람 부는 날에 조금 흔들리긴 해도 R에 대한 내 마음은 늘 초지일관이다. 그녀는 나의 Soul Friend 다.
R은 엑셀과 브레이크 밟는 것 밖에 모르지만 나를 잘 다룬다. 하지만 난감한 때도 있었다. 언젠가 R이 큰 가방을 옆좌석에 올려놓을 때 나의 D기어가 수동 장치로 밀렸었나 보다. 그때를 생각하면 우습고 안타깝다. 하이웨이를 달리는데 R이 아무리 밟아대도 속력을 낼 수가 없었다. 거기다 요란한 소리는 또 얼마나 나던지 나도 그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알다시피 자기를 다 아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R은 다짜고짜 나를 판 딜러에게 속았다고 했다. R도 가끔은 자기 탓인지도 모르고 남 탓을 할 때가 있다.
딜러 삽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결국 R의 남편이 원인을 알아냈다. 고난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작년 어느 날이었다. 어두움이 깔린 저녁 무렵 R의 직장 주차장에 도둑이 들었다. 다른 차들도 있었는데 도둑들도 영혼이 갈급해서 Soul을 채우고 싶었는지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내 배 밑으로 기어들어가 톱으로 내 배기통을 싹둑 잘라 갔다. 나는 아프지는 않았지만 분노했다. 일주일 일당을 날린 R이 가엾어서였다.
R이 시동을 걸었을 때 R보다 내가 더 놀랬다. 주택가의 어둠을 다 몰아낼 정도로 엄청난 소리가 났다. 탁하고 찢어지는 듯한 나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R은 침착했다. R은 뭔 일인지 몰랐어도 죽지는 않겠다 싶었는지 운전대에 얼굴을 바싹 대고 천천히 달렸다. 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집까지 기어코 가면서 R은 "어머나"를 수십 번 외쳤다. 다음날엔 대낮이라 창피했는지 큰 모자를 눌러썼다. R은 무서운 것보다 창피한 것이 더 싫었나 보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굼벵이처럼 달리는 나를 몰고 R은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결국 Kia Soul딜러 샵에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 도둑도 R처럼 이름이 Soul인 나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유가 다리가 길어서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이름 때문이다.
딜러샵에서는 저렴한 중고부품을 찾느라 몇 주간이나 기다리게 했다. 가끔 R은 회사차인 내비게이터를 끌고 나를 보러 왔다. 번쩍번쩍하고 잘생긴 흑마 같은 녀석을 보고 나는 심통이 났다. 땡볕 아래 먼지를 뒤집어쓰고 R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처량하게 느껴졌다.
나는 R의 Soul Friend 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를 좋아하는 R이었다. 내가 없었으면 꼼짝도 못 했을 것이다. R은 가정주부라서 짐도 많이 들고 다녀야 한다. 그런 R이 나 없이 대중교통 수단으로 몇 번씩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그 짐을 들고 다닌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R의 딸인 A도 16살인데도 불구하고 임시 타이어 가는 법도 배워 두었다. R보다는 더 현실적이다.
R이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겨울에 시동을 걸면 나는 히터에서 온기를 내뿜어 실내를 덥혀준다. 허리와 등, 목까지 뜨끈해지게 내 심장에서는 혈액도 흘러나온다.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으로 더위를 날려준다. 날씨가 화창한 날 3D 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진 스펙터클한 장면을 보여 줄 수도 있다. R이 원하는 것을 다 해 줄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내가 당연한 R 때문에 속상하다. 야속한 마음은 오래 참고 있으면 안 된다. 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