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사랑의 다른 이름

'글책봄'에필로그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장미의 삶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매 순간 장미는 완벽하다'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다. 올해처럼 기다린 봄은 없었던 것 같다. 꽃은 그저 피는데 나도 그 꽃들처럼 한 번쯤은 활짝 피고 싶었다.


살면서 두 손을 뻗치면 다 잡을 수 있을 것만 같던 크고 작았던 목표들이 많았다. 그것들은 잡힌 것 같으면서도 흙탕물 속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잡히지가 않았다. 원하는 것일수록 당장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못 이룬 것도 별로 없다. 매일매일의 삶을 잘 견디며 지내왔고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꽃을 피운다는 것이 물질적인 성공만을 의미한다고 보지 않는다. 어떤 인생이건 글로 표현되어 남겨진다면 그것이 바로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즐거움 중에서는 오직 사랑만이 그에 수반되는 고통을 겪을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한다. 자기의 삶과 타인의 삶을 사랑할 수 있을 때에야 인생을 제대로 살아간다고 한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멍에를 매고 살아간다. 때로는 그 멍에가 너무나 무거워서 무릎을 꺾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두 앞으로 나간다. 나름대로 꽃을 피우려고 고난의 순간들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알고 그렇게 용감했던 것일까?


글을 쓰면 한숨을 쉬면서 나를 들볶던 것들의 정체가 형태와 색채를 갖춘 모습으로 드러났다. 글쓰기는 자신을 향해 모험을 시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모르던 '나'의 모습에 도전을 하고 마침내 자신의 헐벗은 모습이 드러난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끌어안아 주어야 한다. 그런 용기가 있어야 나아갈 수 있다. 이 봄을 그냥 보낸다면 그 봄이 다른 봄을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기에 이 봄이 내게 의미가 있었다.


계절의 봄이던 삶에서의 봄이건 어떤 순간에 머무를 수 있었다면 충분히 그것을 누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봄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다른 말인 것 같다. 자연은 전혀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사랑을 받으며 저절로 돌아간다. 나 또한 말할 수 없는 혜택을 입으며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다. 내가 존재하는 것이 내가 애써서 이룬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겸허하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내 주변의 사람들을 위한 축복도 간구하게 된다.



언젠가부터 무엇을 해달라고 하던 기도에서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묻는다. 자연의 한 존재로서 내 몫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싶은데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모를 때가 많아 그럴 수밖에 없다.



자연으로 나가서도 배운다. 벚꽃 나무 아래에 핑크 꽃잎들이 떨어진 채로 바람에 밀려다닌다. 나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나를 지켜보는 눈길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은 남기고 싶었다. 내가 살아가는 의미와 목적, 그리고 감사를 느낄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를 통해서였다. 내가 그것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갑다.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던 자기 연민도 버리고 외유내강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나인 것 같다. 글쓰기 하는 인생은 이미 자신의 꽃을 활짝 피웠다고 말한다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이다.


글을 쓰면서 직접 꽃향기도 맡고 싶어 걷기도 부지런히 했다. 그저 자연을 누리는 것은 쉽지만 나를 표현해 내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며칠 앓기도 했다. 들끓던 것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렇게 비울 수 있어서 고마웠다. 비워져야 다시 채워지는 옹달샘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기다린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물줄기를 말이다.






글책봄 에세이 매거진 에필로그

봄볕이 따사로웠다. 마음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삶의 순간들을 글자로 끄집어내어 볕에 내어놓았다. 습기가 차 곰팡이가 슬었던 기억들조차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재 단장되는 것 같았다. 글이 힘든 것들을 쉽게 해 주지는 못했으나 나아지게는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글 책 봄 에세이 매거진에 내놓은 나의 글들로 인해 내가 제법 '잘 사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글로 표현하면서 구체적인 내 삶의 이모저모가 드러났고 부족한 점들을 뒤늦게나마 인정하면서 나는 거듭나게 되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그래서 외유내강적인 사람으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봄볕이 내게 이처럼 따사로웠던 적은 없었다. 그처럼 활짝 핀 순간들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다시 올 내년 봄을 위해 이 봄을 고이 보내드린다. 봄이 사랑의 다른 이름일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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