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번개모임을 갖게 되었다. 스터디를 하다가 불현듯 서로 만나자고 했고 말한 지 한 시간도 안되어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3명이 모였다. 지난 1년간 줌으로만 대화를 나누었는데 만나고 나니 비대면의 한계가 더 느껴졌다.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실감했는데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쉽던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폭우가 멈추었기에 빗속을 걸으며 근처 숲에서 걷다가 헤어지기로 했다. 길이 축축하고 인적이 드물었지만 혼자가 아니라 상관이 없었다. 빗물이 그대로 냇물이 된 듯 물소리가 폭포 소리처럼 굉장했다. 다리가 아픈 지인의 발걸음에 맞추어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며 두어 시간가량 숲을 누렸다. 한분이 빗방울이 맺힌 딸기를 따 주셨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경사가 진 곳에서는 뒤로 내려가야 했지만 농담도 하는 장난꾸러기셨다.
빗속을 걷는 꽃 그림과 흰 우산 속 두 분의 대화가 낭만적이었다. 마음까지 촉촉해졌다. 비 내리는 숲 속 정취를 마음껏 누렸다. 비가 오면 집안으로만 숨어들곤 했었다. 비 맞으면 감기 걸린다며 뛰곤 했는데 그날은 그런 생각이 없었다. 평소 생각을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 새로웠다. 그날의 풀향기가 아직도 새록새록하게 풍기는 것 같다. 그날의 만남은 '나' 때문이었다. 종종 다가오는 우울에 대해 나누었는데 "그러지 말고 나와요. 밥 먹읍시다!"라며 제안한 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래보다 탈이 많은 편인데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몸과 마음을 대하는 내 태도가 거뜬해졌다. 누군가의 '나를 위한 시간'이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 나의 부족함, 어려움을 나누었고 공감하며 위로를 해주시는 분들이 달려 나와 주셨다.
우리는 그날 이후 다시 만났다. 비가 오지 않아서 숲의 분위기는 달랐지만 그때처럼 즐거웠다. 이번엔 좀 더 호젓한 산책길을 선택해 보았다. 두어 시간 동안 밀림 같은 숲 속에서 내키는 대로 걸어 다니며 정글 속의 어린이들처럼 놀았다. 가끔 큰 나무의 등 뒤에 숨어 "꽥" 소리 지르며 두 분을 놀라게 했다. 냇가위 통 외나무다리에 누군가가 'Thank you'라고 써 놓은 글씨도 들여다보았다. 아무대로나 팔을 뻗은 딸기 나뭇가지를 가만히 휘어잡아 딸기를 한 움큼 따서 입속에 넣고 우물거렸다. 새콤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했다. 여기저기엔 고사리가 작은 밀림처럼 우거져 있었다. 버섯 종류들도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자라고 있는데 먹으면 좋은 것인지 독이 되는 것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밴쿠버의 숲은 이끼가 잔뜩 붙어 있는 나무들이 많다. 이끼 때문에 나무가 죽는 것인지 아니면 나무가 죽어서 이끼가 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이끼가 낀 숲이 더 많은 피톤치드를 생산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 이끼를 가만히 만져 보았다.
숲에 들어가기 전 나만의 의식을 치르고 싶었다. 아치형으로 우거진 숲의 입구에서 열쇠로 숲의 문을 '찰칵' 열고 들어 간다. "나는 내가 소유한 것들로부터 벗어난다. 내가 소유한 것으로 나는 정의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나 (Being)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대로 만들어진 자연 그 자체이다."
숲에서는 막막하게 외롭지 않다. 보이는 존재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낄 수가 있다. 나뭇잎을 흔들어 놓는 바람, 풀 내음과 숨어 피어 더 감미로운 들꽃의 향기, 키 큰 나무 사이를 기어코 뚫고 들어와 반기는 투명한 빛, 모습은 볼 수 없어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노래하는 새, 부스럭 부스럭 거리는 이름 모를 동물의 소리가 있다. 우리들의 오감은 피아노 반주의 선율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가수의 노래처럼 반응한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평안해 보이고 주인을 따라다니는 반려견들은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일상의 기쁨이 특별한 일을 성취하는 것을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매일 해야 할 일들, 가족을 돌보는 일등으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고 지인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나 역시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은 가장 우선순위로 건강을 두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건강하지 않다는 사인을 보내오는 내 몸과 마음을 더 이상 내 버려두면 안 될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아프기 전에 자신을 돌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나도 역시 숲 전도사가 되어 입만 열면 되뇐다. "숲에서 걸어요. 그러면 지금보다 나아질 거예요." 일상의 기쁨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운동화를 신고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숲은 우리에게 최선의 공간이다. 이보다 더 나은 힐링 공간이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