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마법에 걸린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지. 내가 말이야, 나는 뒷전이고 너를 쫓고 있잖아.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난 너를 사랑하잖아. 나의 그런 모습이 당연한 나, 신기해. 사랑이란 이런 거지.
나도 너처럼 그랬다. 우리 엄마 앞에서 말이야. 그런데 그땐 몰랐지. 그런 내가 '너'같다는 것을 이제 알겠어. 엄마가 마법에 걸렸던 것처럼 나도 똑같은 마법에 걸렸어. 기적 같은 마법이야. 사랑은.
네가 태어나고 난 다음부터 난 나를 잊었어. 너를 안고나서부터 철없던 시절, 애틋한 시절은 버렸고 엄마는 원더우먼이 되었지. 양팔을 벌리고 빙빙 몇 바퀴 멋지게 돌고 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렇게 달콤하고 강한 여자가 되어 어디든 뛰어다녔지. 못할 일이 없었던 거야. 엄마는 뭐든지 다 했어. 사랑 때문에.
언젠가부터인가 계절이 스치고 지나는 것을 알아차렸어. 봄꽃의 향기가 맡아졌고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좋아지고 가을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노래처럼 느껴지더라. 흰 눈이 내리면 나 혼자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가는데 혼자가 좋다는 느낌, 너만 알던 내가 다시 나를 찾아오려나 봐.
제대로 불러본 기억조차 없는데 내 노래는 다 어디로 간 걸까? 노래를 부르고 싶어. 기억나는 노래가 7080년에 머무르지만 그래도 좋아. 껑충 건너뛴 시간을 자꾸 뒤돌아 보지만 기억이 헛바퀴질 해. 생각나는 것은 '너희들' 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사랑 때문이야.
난 마법에 걸렸던 거지. 사랑이라는 두 글자 마법 말이야.
견딜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지만 꿈꿀 수 있는 것들도 줄어들고 있어. 그래도 의식이 있는 한 마법은 계속될 거야. 이제 바꿀 수 없는 것을 바라지 않는 내가 되었기에 조바심은 없어. 오랫동안 그런 나로, 살아왔기에 괜찮아. 다만 잊지는 말아줘, 엄마도 여자였다는 것을 말이야.
그것을 어떻게 '나'란 사람이 할 수 있었는지, 기적이 내게 벌어진 거지.
마법은 기적의 다른 이름인 것 같아.
엄마가 그랬어. 엄마가 떠난다고 해서 엄마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감정은 '보고 싶다' 일지도 몰라.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으니까. 하지만 어디서 건 엄마가 지켜보고 있고 사랑한다고 생각하라고 했어. 엄마는 영원히 너에게 있을 거라고 했어. 나도 그렇게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엄마는 영원한 존재야. 사라지지 않아. 네 곁에 네가 웃는 모습과 우는 모습처럼 그렇게 함께 할 거야. 외할머니도 엄마도 기적 같은 사랑을 했지
내 사랑에게
아침 등교 시간 30분 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네 인기척을 들어보려고 해. 잔소리 대신 조용한 침묵으로 네 아침을 맞게 해 주려고 결심했지. 부스럭 소리가 나면 네가 일어난 거고 아니면 늦는 거지. 어젯밤에는 잠을 잘 났나, 중간에 깨지는 않았나, 오늘 아침 기분은 어떤가.
차에 오르고 우리가 나누는 첫마디, "늦었다." 엑셀에 발을 올리고 가장 빠른 길을 찾아 요기 조리 내비게이션보다 내가 더 빨라, 옆에 앉은 너를 보며 "아침을 굶어서 어떻게 하지", 부지런 떨었는데 넌 아침도 못 먹었구나.
차 안의 FM 라디오 소리도 좋은데, 네 음악을 들으려 하는구나. 안돼. 엄마의 음악을 틀어주렴. 음악이 블루투스로 차 안에 낮게 깔린다. 나를 위해 다운한 너의 노래, 머리를 흔들며 너와 엄마는 갑자기 17살, 아바의 '댄싱퀸'이야.
이제 고 3이 되는 너, 무거운 자갈 포대를 어깨 위에 올려놓은 듯 힘겹게 보이던 너, 마음과는 반대로 놀고 싶은 나이의 너, 공부가 좋아진 늙은 엄마, 서로 바뀐 얄미운 타이밍.
넌 기억력이 좋은 나이니까, 지금이 제일 중요해. 하지만 몇 분 전 공부가 좋다더니 잠시 후 바로 친구와 약속을 만드는 너, 너는 못 말리는 17세.
어느새 터널 같던 겨울이 갔고 태양의 계절인 여름 앞에 '너와 나' 나란히 서 있구나. 우린 지난겨울에 알 수 없는 미래가 무섭게 다가올까 봐 어깨를 웅크리고 살았었지. 그런데 앞을 봐, 지금은 밝은 빛이 비치는 여름날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