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항해사

새롭고 작은 출발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주부가 되어 본 사람은 안다. 아이를 양육해 본 사람은 안다. 주변에 주부가 아닌 사람이 별로 없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사람이 수두룩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일은 오로지 혼자만이 해내야 하는 스펙터클한 여정이다. 시도 때도 없는 미션이 주어지는데 그 미션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바랄 수 없고 쉴 수도 없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미션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마음밭이 단단해야 하는데 그 마음밭은 처음부터 기경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한 미션을 완수할 때마다 갈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달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인생을 살면서 백 미터 달리기 출발 선상에 홀로 서서 출발해야 하던 때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마라톤 경주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 뛰어 들어온 화성에서 온 남자와 더불어 망망대해를 함께 항해했다. 각자 다른 속 마음으로 이야기하는데 겉마음으로 들었으니 '어' 다르고 '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산 것이다. 아마도 남자의 언어를 여자의 언어로, 또는 여자의 언어를 남자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AI라도 나온다면 모를까 평생을 살아도 각자 자기가 살아온 별에 에서부터 가져온 태생적 DNA는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 다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게 되고 예민함은 무딤으로 승화되어 그럭저럭 살만 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을 이해라고 부르려고 한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화성에서 온 외계인과 함께 서로가 생전 처음 해보던 육아는 마치 달리는 마라톤 경기에 아이들을 업고 달리는 것과 같았다. 서로가 숨 넘어 갈듯 지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아이를 넘겨주고 쉬려고 한 적도 있었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안절부절못하며 그 상황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느라 지친 부모 사이에서 대화의 공통분모를 찾아 얼마나 머릿속으로 셈을 했을까 싶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오히려 그런 갈등 상황에서 크느라 아이들은 고군분투하면서 더 깊고 넓게 사고하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주부란 직업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만년 품앗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존감도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주부 역할, 그러나 누구도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직장을 그만둘 때처럼 원할 때 스스로 빠져나갈 수 없다. 비유를 하자면 주부는 거친 바다에서 항해를 하던 선박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온 가족을 태우고 둥 둥 떠다녀야 하던 배. 선장인 가장이 항해를 잘하던 못하던 상관없이 믿고 맡기며 온전하게 선박 안의 자녀들과 함께 하던 품 넓은 선박인 것이다.


점 점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야 하던 가장을 도와 만선의 기쁨을 누리며 항구로 돌아오기도 하고 때론 물고기는커녕 풍랑을 만나 낭패를 당한 채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 좁은 선박 안에서 쉴 새 없이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시도 때도 없는 아픈 아이들을 안고 밤을 새우면서도 그 자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던 강한 선원이 되어 갔지만 엄마, 아내라는 타이틀만 있을 뿐 이름 석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이힐을 신고 사무실을 또각또각 걷던 그 여자의 일과 낭만은 모두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표가 나는 집안일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모두 증기처럼 증발해 버렸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하나씩 성장해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나고 선주 노릇을 하느라 지치고 힘든 선장은 힘겨워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이제 항구에 정박한 낡은 배의 키를 잡고 줄낚시 몇 개 챙겨서 뿌웅 뱃고동을 울리며 주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치긴 마찬 가지지만 제대로 나침판 한번 볼 줄 모르면서 항해를 했던 시간의 이야기와는 다른 오기가 생긴다면 말이다. 오랜 인내가 만들어낸 용기는 누구도 손댈 수가 없을 만큼 진득하다고 믿는다.


조각난 정체성을 한 조각씩 모아 풀 바르고 테이프 붙여 가며 다시 이어 붙인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그냥 행복한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누군가와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기대감을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다. 스스로가 바라고 원하는 가치, 사명과 비전이 고개를 들고 마치 애완동물처럼 턱밑에서 응시하며 보챈다. 이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소명의식 같은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자라면서 받아온 정신교육,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하고 싶지 않던 것을 하던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자기 경영을 하며 세상을 다시 살아보고프다. 그 욕구에 그간 인생을 통해 몸으로 배운 쓰라린 경험이 더해져 뭔가 사회의 거름이 될 수 있는 자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터무니없이 길어진 평균 수명의 시간이 더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앞으로 몇십 년을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묶어가며 주부라는 일에 집중했던 내력, 그리고 주부가 사회로 나오기까지 크고 작게 발목을 붙잡은 장애물, 상황, 간섭 등 그 모든 것들을 헤치고 여기까지 온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주부들은 알아주지 않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 여기까지 왔으므로 누구보다도 내성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 상황들로 인해 카멜레온처럼 변신할 줄 알고 강철 부대 대원들 같은 투지로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하게 되면서 마음이 바쁘고 분주했다. 하지만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일의 우선 순위에 대해 고민할뿐 일이 싫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글을 쓰는 글벗 이웃들도 자신들만의 나침판을 가지고 부지런히 뭔가를 기획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던 아니면 더 크게 든 지 자신만을 위한 생각정리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브런치처럼 정리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체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 전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 나는 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글이 어느 정도는 답을 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 그리고 대답이야말로 매일같이 하루를 맞이 하기 위해서 우리가 꼭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막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