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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Jan 19. 2020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북촌 - 어둠속의 대화

북촌에 간다면

Dialogue in the Dark

시각이 차단된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더 잘 알게 되는 인간의 본질

북촌 전시회 - 어둠속의 대화

어둠 속의 대화는 완전한 어둠 속에 꾸며진 7개의 테마를 시각 이외의 감각으로 체험하는 능동적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전시의 모든 과정은 완전한 암흑 속 공간에서 100분 간 전문 로드마스터의 인솔 하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어땠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3만 원이 아깝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도 느끼는 바가 많았고 가기 전에 썸 타는 사이에도 추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왜 그런지 잘 알겠다^^
 

몇 년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전시회였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예약을 못해서와 같은 여러 이유로 미루다 드디어 다녀왔다. 보통은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기 전에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믿어서 최대한 많이 찾아보려고 하는데 이 활동만큼은 사전에 어떤 정보도 없이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모르고 갈수록 선입견 없이 전시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프로그램은 15분 간격으로 운영돼서 선택할 수 있는 시간대는 많지만 미리 예매하는 걸 추천한다. 참여하는 인원들이 다 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 같이 이동한다. 아 그리고, 짐을 맡길 수 있는 라커가 있다. 나 같은 보부상에게 은근 중요한 것ㅋㅋㅋㅋㅋㅋ

체험형 전시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눈이 안 보이게 하는 건지 궁금했다. '안대를 써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인당 하나씩 *지팡이를 받았다. 지팡이와 함께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공간에 들어간 뒤부터는 정말 아-무겠도 보이지 않았다. 빛 한줄기 조차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각이 완전히 차단된 채로 전시를 시작했다.

전시의 시작과 동시에 로드마스터님께서 지금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물어보는데 솔직하게 말해서는 답답하고 두려웠다. 로드마스터님도 보통 물어보면 보통은 ‘무섭다, 나가고 싶다, 어지럽다’ 등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함께 온 일행 혹은 타인과 두 명씩 팀을 만든다.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숙련된 로드마스터가 긴장을 풀어주고 팀이 있어서 그런지 무섭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 지팡이의 역할: 시각장애인이 사용하고 있는 지팡이의 색깔은 흰색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이 지팡이는 동정이나 무능의 상징이 아니라 자립과 성취의 상징이라고 한다. )


이 나이에 창피하긴 하지만 나는 어둠을 두려워한다. 밤도, 어두컴컴한 공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클럽도 술집도 새벽도 밤도 왠지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도 무드등을 켜고 잘만큼 겁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뭔가 보이지 않는 미지의 상황은 늘 무섭다. 덕분에 의식이 있는 채로 이렇게 오랫동안 어둠에 있었던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 이 뒤부터는 다 프로그램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


내가 정확하게 어떤 곳들을 갔는지는 모른다. 지팡이를 쥐지 않은 손으로 톡톡 만져보니 대나무 길이였던 곳을 시작으로 물소리를 들으며 100분 동안 배를 타고 바람을 느끼고, 나뭇잎을 만지고, 수산시장에 가고, 어떤 물건을 파는지를 맞춰보고, 카페에도 가고 여러 활동을 했다. 오랜만에 휴대폰이랑도 떨어져서 온전히 전시에 녹아들 수 있었다. 요즘은 미술관에 가도 전시회에 가도 SNS용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나도 사람인지라 어딘가 가면 올리든 올리지 않든 뭔가 남기고 싶다.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싶다고 기왕 시간 내서 온 김에 예쁜 사진도 찍고 싶고, 뭐가 궁금하면 찾아보고 싶고 그랬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는 오히려 다른 생각할 시간이 없으니까 좋았다.


넘어지지 않고 앞사람과 같은 길로 가기 위해서 지팡이로 열심히 땅을 두드리고, 만져보고 얼굴에 느껴지는 바람을 느껴보고 옆사람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랬다. 시장에서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서도 손으로 만지고, 흔들어보고, 냄새를 맡아봐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카페에 가서는 음료를 주문하고 같이 마셔보는 시간이 있다. (캔 음료가 제공된다)


눈을 가리면 미각도 떨어진다고 한다. 진짜로 눈을 가리고 먹으니까 내가 먹는 음료가 무슨 맛인지 구분이 잘 안되었다. 그러고 나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 것 같냐는 친구의 질문에 생각도 하기 싫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이게 일상이고, 여기서 기쁨과 슬픔 같은 희로애락을 느끼고 살겠구나. 내가 멀고 까마득한 길이라고 느낀 이 길이 이분에게는 매일 걸어 나가야 하는 길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동정이나 슬픔이 아니라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건 경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늘 오히려 시각이라는 감각이 차단되었을 때 후각, 촉각, 청각, 미각과 더불어 인간과 인생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했다.


더불어 로드마스터님께서 말해주시기를 시각장애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전맹부터 빛이 있는지는 알 수 있는 단계까지 등. 시각장애 역시 선척적일 수도 있고 후천적일 수도 있다고 했다. 친구, 연인, 아이, 부모님 누구와 와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전시 종료 후에 어둠속에서 걸었던 체험코스를 눈을 뜬 채로 다시 경험해보는 것도 뜻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전시가 끝나고 나서 찾아보니 시각장애에 대한 정의는 시대나 사회에 따라서도 다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시각장애의 정의는 장애인의 복지를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복지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 시행 규칙 상 시각장애인의 정의

나쁜 눈의 시력(만국식 시력표에 따라 측정된 교정시력을 말한다. 이하 같다)이 0.02 이하인 사람

좋은 눈의 시력이 0.2 이하인 사람

두 눈의 시야가 각각 주 시점에서 10도 이하로 남은 사람

두 눈의 시야 2분의 1 이상을 잃은 사람


그리고 아직은 익숙하지가 않아서 시각장애인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다소 어려워서 찾아보았다. 아래 링크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서 첨부한다. http://www.kbuwel.or.kr/Blind/For


처음 만났을 때 -> 첫인사는 악수와 함께 또렷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 친절한 말 한마디와 함께 시각장애인이 붙잡을 수 있도록 당신의 팔꿈치를 살짝 내밀어주세요. 등을 밀거나 흰 지팡이 또는 옷자락을 잡아당기시면 안 됩니다

식사를 할 때-> 국은 감잣국이고요, 10시 방향에 김치가 있습니다.

젓가락을 쥔 시각장애인의 손을 잡고 반찬이 놓여있는 그릇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시계 방향의 위치로 설명해주세요.


어둠 속의 대화(북촌)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1-29

소요시간: 100분

영업시간: 화, 수, 목, 금 오전11시 ~ 오후 8시

토, 일, 공휴일 오전 10시 ~ 오후 7시 (월요일 휴관) / 인터파크에서 예매 가능

관람연령: 8세 이상 ~ 70세 이하 (1회차당 최소 1명 ~ 최대8명)

요금: 성인 30,000 원 / 청소년 20,000원 (신분증 지참 필)

전화번호: 02-313-9977


전시 소개:
198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박사 (Dr. Andreas Heineke)에 의해 시작된 어둠속의 대화는 32년간 유럽,아시아,미국 등 전세계 32개국 160개 지역에서 1200만명 이상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을 거듭해 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인 관계를 단절시키는 '어둠' 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시각 이외의 다양한 감각들을 활용한 익숙하지만 낯선, 진정한 소통의 발견이라는 발상에서 본 전시는 시작됩니다. 어둠속에서 상상력은 각자가 살아온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무의식 속에 잠재된 창의성을 발현하게 도와준다. (전시 소개는 어둠속의 대화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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