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줄 알았던 너를, 다시 꺼내어 봅니다.
2학년이 되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찾은 이름은 그 애의 이름과 Y의 이름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Y와 같은 반이 되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찾은 이름은, 그 애의 이름이었다.
새 학기, 일찍 도착한 교실.
맨 뒤에는 반 배정표가 붙어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Y의 이름부터 찾았다. 다행히, 그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 애의 이름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채, 아이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급히 내 가방을 내려놓은 자리로 돌아갔다.
그 애가 우리 반일지 모른다는 어렴풋한 기대를 안고 자리에 앉았다.
마음이 이리저리 출렁이다, 그 끝에 씁쓸함이 닿았다.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 뒷문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애도 들어왔다. 그런데, 다시 나갔다.
‘아, 다른 반이구나.’
잠깐 아쉬움이 스쳤다.
그러던 순간, 교실 뒷자리에서 누군가 장난스럽게 외쳤다.
“어? 승이, 니 우리 반 아니가?”
그제야 알았다. 그 애는 우리 반이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 애는 내 뒤 대각선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기 앉아도 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자리 비었어.”
“고마워.”
그 애는 그렇게, 내 뒷자리에 앉았다.
그 해에도 나는 부반장이 되었고, 반장은 지난 학기에 전학 온 유진이, 대의원은 그 애였다.
회의도 많고, 맡은 역할도 많았던 해였다.
나는 늘 서기를 맡았다. 학급 일지를 쓰고, 회의록을 정리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유진이나 그 애와 나를 비교하고 있었다.
늘 그 둘보다 느리고, 어딘가 무능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2학년과 3학년이 모이는 전체 간부회의(요즘은 학생회라는)가 열렸다.
1학년은 참석하지 않는 회의였고, 반에서 여학생 한 명, 남학생 한 명이 대표로 참여했다.
우리 반은 유진이와 그 애가 늘 참석하곤 했다.
그날은 유진이가 아파서 결석한 날이었다.
3교시를 빠지고, 나 혼자 그 애와 함께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 처음 가보는데. 떨린다.”
내가 작게 말하자, 그 애가 물었다.
“너 진짜 가야 해? 딴 애 보내면 안 돼?”
“왜? 내가 잘 못해서 그래? 중요한 자리야?”
“아니. 중요한 회의는 아닌데, 내 생각엔 공부 한 자 더 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서. 너 못할까 봐 그런 말 한 건 아니야.”
회의가 아니라, 내가 걱정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괜히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는 작게 웃으며 물었다.
“가면 뭐 해야 해? 서기?”
“아니야. 그냥 병풍처럼 있으면 돼. 선배들이 다 해.”
그 말, 병풍처럼 있으면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회의가 시작되고 나서야, 그 말이 왜 그런 말이었는지 알게 됐다.
3학년들만 제 할 말만 하고, 2학년들은 서류만 왔다 갔다 하는 자리였다.
나는 입을 삐죽이며 속삭였다.
“이게 뭐야. 이럴 거면 사람을 왜 모아.”
그때 마침, 회의가 끝났다.
다들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3학년 선배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아, 네가 걔구나?”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고, 그 순간, 딸꾹- 소리가 났다.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하다가 그렇게 놀라냐?”
“아, 놀라서… 딸꾹, 래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 선배는 장난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왁!”
나는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놀라 책상에 손이 닿았다.
그 애가 자연스럽게 일어나 선배 앞을 가로막았다.
“애 놀라잖아요. 그만하고 가세요.”
선배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야, 이 상황에서도 그러냐. 진짜네.”
그 선배가 교실로 돌아가고, 나는 딸꾹질을 멈추려 조용히 숨을 참았다.
그때, 그 애가 말했다.
“미안.”
“왜 미안해? 딸꾹질, 너 잘못한 거 없어.”
“있어. 저 형이 너 놀린 거, 나 때문이라.”
“뭘 잘못했다고 그래?”
“형들이 자꾸 놀려서. 이상형이 누구냐고. 그 순간 떠오른 사람이, 너였어. 그래서 그랬어.”
나는 순간 놀라 말을 잊었다가, 겨우 입을 뗐다.
“아…. 아침부터 왜 가냐고 그랬던 거, 그거 때문이었구나?”
“응.”
“근데 왜 나야?”
“그냥… 생각나는 게 너였어.”
“유진이도 있잖아.”
“걔는 계속 형들 보잖아. 회의 시간 내내.”
“선배들이 계속 놀려?”
“볼 때마다.”
“그럼 됐어. 내 핑계 대. 대신 나 오늘부터 간부회의 안 갈게. 그럼 되지?”
회의라는 게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갈 때마다 이렇게 누군가가 놀린다면, 굳이 갈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애의 편을 들기로 했다. 그게 더 뿌듯할 것 같았으니까.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선배들보다는— 조금은 더 알고 싶은, 그 애의 편을 들고 싶었다.
그 순간부터였을까. 나는 그 애의 마음을,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그 시절, 내가 그 애를 알고 싶었던 건 사실, 그 애를 통해 나 자신을 더 알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다.
그 애의 편을 들고 싶었던 건,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