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줄 알았던 너를, 다시 꺼내어 봅니다.
읽기 전에 안내드릴게요.
이 글에는 제가 중학생 시절 겪은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상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언어와 감정을 그대로 담다 보니,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표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를,
그리고 그 시간을 기억하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해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J는 처음부터 나를 괴롭힌 건 아니었다.
학기 초에는 자기 키와 비슷한 C와 윤영이가 먼저였다.
그 둘은 대꾸했고, 맞섰다. 그러자 곧, 타깃은 나로 옮겨왔다.
나도 J와 키가 비슷했으니까.
처음엔 그런 줄도 몰랐다.
시작은 체육 시간에 준비운동으로 두 바퀴를 돌 때, 귀 옆에서 “돼지가 옆에서 달린다”고 속삭이는 거였다.
딱 나만 들을 수 있게.
그 정도는 참을 만했다.
그냥 웃고 넘기면, 그만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돼지라는 말만 무시하면 지쳐서 나가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캠프를 다녀온 뒤의 체육 시간, 스트레칭을 하면서 손을 휘두르는 척을 하더니 가슴을 쿡쿡 찔렀다.
나는 놀라 굳었다. 타인의 손길이 무참하게 느껴질 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굳은 내 표정을 보면서 J는 자기의 친구들과 쟤 표정 보라며 깔깔거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J는 본격적으로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은 여름이 막 지나간 무렵이었다. 바람은 조금 선선했지만,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과학실로 모이라고 하셔서 그대로 나왔다.
과학실 앞 복도에서 J와 마주쳤다. J는 나를 보자마자 일부러 어깨를 들이댔다.
피했더니, 내 팔을 세게 꼬집었다. 피날 정도로.
나는 뿌리쳤고, 과학실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J가 소리쳤다.
“이년이, 지금 나 밀쳤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또 시비구나.
"말이 없네. 이게 미쳤나.”
그리고 뺨을 때렸다.
얼마나 세게 친 건지 안경이 날아갔다. 렌즈 한 쪽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는 멍한 채 서 있었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야, 싸운다!"
누가 외쳤다.
그 소리마저 그 애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그 애는 싸움을 구경거리로 볼 만한 성격이 아니었는데도.
그럴 정도로, 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싸움 구경을 온 애들이 우리 둘을 에워쌌다. J는 욕설을 퍼부었고, 나는 그제야 말했다.
"내가 너한테 뭘 했는데. 왜 이래. 시비 건 적도 없는데. 뭐가 불만인데."
말 끝이 떨렸지만, 그 떨림을 비웃듯 J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내 머리채를 잡으려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발을 뻗었다. 한 번 찼고, J는 밀렸다.
“이년이 할 게 없나, 발로 차네."
쌍욕들의 세례가 이어졌고, 나는 두 번째로 차며 말했다.
"넌 할줄 아는 욕이 ㅆㅂ년밖에 없어? 그말만 몇번 하냐?"
그러자 J가 말했다.
“넌 맞아도 싼 년이야.”
“내가 왜 맞아도 싼 년이야?”
J가 대답하는 사이 머리채를 잡았다. 막 흔들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말했다.
“선생님 온다!”
그 목소리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 애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그 말만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뺨이 부은 채로 과학 수업을 들었다. 그 때 그 애는 몇 자리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실험 도구 너머로 그 애의 얼굴을 보려 했지만, 끝내 보지 못했다.
그게 더 비참했다.
그날은 집에 가는 길이 눈물길이었다.
바람이 불어 눈물을 가져가면 눈이 매웠다.
매서운 눈물 때문에, 길가 쉼터에 앉아, 한참을 더 울었다.
분명한 건, 내가 때린 건 정당방위였다.
하지만 내가 때렸던 순간이 더 무서웠다.
맞고 난 뒤, 내 몸이 떨렸다.
손이, 다리가, 온몸이 떨렸다.
내가 맞는 순간을,
그걸 친구들이 봤다는 게 수치스러웠다.
그 나이에, 모두 앞에서 뺨을 맞는다는 것. 그건 내게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반응했다. 소리를 지르고, 발로 찼다.
울고 우는 동안, 나는 그 과학실로 몇번이고 되돌아갔다.
그 순간이 플래시백처럼 이어졌다.
나는, 그 과학실에서 다시 그 애를 봤다. 그 때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표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놀란 얼굴이었는지, 당황한 얼굴이었는지, 아니면 재미있다는 얼굴이었는지.
그때도, 지금도 그 애의 얼굴에 대한 기억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무서움보다도. 그 표정을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날 이후, 나는 반 아이들이 무서워졌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운 나를, 분명히 안다.
저의 일곱번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 조금 숨이 가빠졌다면, 괜찮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여덟번째 이야기는 이번 주 금요일 새벽, 문을 열게요.
다시, 저와 함께 걸어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