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다
다음 날부터, J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이 반에서 혼자가 되었구나—하고.
반 친구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교실이, 오늘은 나를 시험대에 세우는 재판장이 되어 있었다.
안경점에서 새 안경을 맞췄을 땐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교실 문 앞에 서는 순간, 그 문이 처음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늘 하던 대로, 아침 일찍 교실에 가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그 루틴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최대한 늦게 가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교실에 들어가는 일조차 무서웠다.
문 앞에 서니, 그 애의 마지막 표정만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그 애는 나를 외면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정확히 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늘 있던 것처럼, 그 애가 있었을 뿐인데—
나는 혼자라는 걸, 외로운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즈음, 나는 H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같은 학원에서 만난 H는 적어도, 우리 반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벗어나 있는 사람이었다.
H와는 쉬는 시간엔 함께할 수 없었지만, 나는 점심시간마다 H를 찾아갔다.
적어도 앞반인 H는, 내가 겪은 일들을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밤늦게까지 시험 공부를 위해 학원 자습실에서 머무르기도 하고, 근처 초등학교를 산책하며 나눴던 대화들이 조금씩 우리를 연결시켰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말했다.
“나는 너랑 있으면 마음대로 말해도 되고, 눈치도 안 봐도 돼.
너는 내 바다 같아. 정말… 내 마음을 탁 트이게 해 줘서 고마워.”
우리는 성적을 공유했고, 서로 예상 점수를 맞춰보는 내기도 했다.
못하는 과목일수록 더 많이 웃었고, 중간고사가 끝났을 땐, 내가 아니라 H가 이겼다.
그렇게 웃던 날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날카로운 말이 날아왔다.
“야, 너 남자 만나고 다닌다며? 할 일은 제대로 하고 다녀?”
나는 얼어붙었다. 그 말은 그 애의 친구가 던진 것이었는데, 장난스러운 표정이었다.
“내가 뭘 하든 무슨 상관이야. 친구 만난 건데 왜 이래?”
아. 말이 너무 날카롭게 나갔나.
“친구는 무슨, 둘이 꿀 떨어지던데? 난 벌인 줄 알았지.”
“지금 이게 다 농담이야? 내가 구경거리야? J가 나 괴롭힐 땐 다 재밌어했잖아.
도와준 건 C랑 윤영이뿐이었어. 근데 이젠 구경거리 없어지니까, 나한테 화풀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내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침묵 속에 아무 말도 못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화장실로 뛰어가 울었다.
‘나는 왜 지금 살아 있지?’
살아 있는 내가 안전해질 때까지, 화장실에서 울고 또 울었다.
종례가 가까워질 즈음, 누군가 나를 찾으러 왔다.
무슨 정신으로 종례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나는, 내 무너짐을 다 보여줬고 정말 창피했다.
가방을 챙겨, 비척비척 집으로 향했다.
하찮은 개미가 된 기분이었다.
그 비참함에 숨을 죽인 채, 집에 가는 길을 따라 걷다, 쉼터에 주저앉았다.
노을이 지는 논을 보며 생각했다.
‘내일은… 또 어떻게 지내야 하나.
저 해는 내일 또 뜨겠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학원도.. 일단은 학원을 가야 하는데.
그날, 결국 학원에 지각을 했다.
눈이 부어 세수를 다시 하고, 뒷정리를 하다 보니 3교시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H는 나를 보자마자 놀란 눈으로 말했다.
“눈… 왜 그래?”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너랑 나랑 만난다고… 애들이 미워해.”
H는 잠시 침묵했다. 나는 그 침묵을 읽지 못했다.
“...넌 나 안 미워하지? 나 미워해?”
“그렇게 말하는데 누가 널 미워해.”
“...그래. 그거면 돼. 그거면 됐어.”
그날 밤은 조금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이 무서웠지만, H의 그 위로가 내게는 힘이 되었다.
다음 날. 여전했다. 그 누구도 말을 먼저 걸지 않았다.
나는 고민했다. 그리고 수업 중,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을 보는 순간, 나는 조금만 용감해지기로 했다.
“나 물어볼 거 있어. 시간 괜찮아?”
“...너, H랑 사귄다며.”
묵언의 거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냈다.
“걔는 친구야. 그래서—”
“다음 시간에 와. 지금은... 안돼.”
“왜? 내가 남자 만나러 다녀서 그래?”
“아니... 이건 나도 풀어봐야 해.”
“...알았어.”
그냥, 괜히 왔어.
눈물이 울컥 맻혔다. 눈물을 숨기며 돌아서려는데, 그 애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왜 울어. 금방 풀고, 알려줄게.”
그 말에 나는 멈칫했다.
“아니야. 나 혼자 풀 수 있을 것 같아. 도저히 안 되면… 그때 물어볼게.”
그리고, 그날 그 애에게 다시 물어보러 가지 못했다.
혼자인 게 낫다고, 스스로 생각해버렸다.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 날의 무너진 마음과 그 마음을 덮은 따뜻함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 무너짐은, 내가 회복할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회복을 가능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그 애와의 시간, 그리고 H와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