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부산의 정을 가르쳐준 사람)
책장이 덮였는데도, 마음에 남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제게는 아버지 같았고, 아빠라고 불러서 행복했던 선배, A 선배.
우리 동기들은 나를 따라 '아부지'라고 불렀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는 1년 내내, 그 선배는 산 같았습니다.
움직이지 않아도 태산같은 그 느낌이, 말을 하지 않아도 깊은 울림이 있는 사람.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옆에서 함께 지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아부지라고 장난스럽게 불렀습니다.
사실, 그 선배는 우리보다 겨우 4살 많았음에도-
철없던 나는 그 선배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만큼 의지했습니다.
9월 7일, 그 산 같은 사람의 생일을 맞아 존경을 담아 글을 씁니다.
선배와의 첫 만남은 두 번째 동아리방 방문 때였습니다.
같이 훌라를 하며 깔깔 웃던 그 시간은, 따분하던 대학 생활을 단숨에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아, 이제는 즐겁게 지낼 수 있겠다.”
그런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선배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고 싶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이었는데도, 마치 나의 바다 같은 친구들처럼 느껴졌거든요.
나를 우울의 바다에서 건져준, 나의 빛과 소금들처럼.
태양 같고, 빛 같고, 낮달 같고, 바다 같은—
처음 만났는데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은 직감.
나는 그 믿음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선배는 첫 만남에서 이미 나를 알아본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첫인상이 어땠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했지요.
“위태위태한 것 같아. 넌 아찔해 보여.”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꿰뚫어본 걸까요.
내 동기들조차도 알지 못했던 비밀을, 선배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동기들이 없으면 공허한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동기들과, 선배들과 함께 있는 그 시간만이
내가 진짜 살아 있는 시간 같았으니까요.
공기 중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비늘이 마르며 몸이 메말라가는 것처럼—
우울은 내 기력과 수분을 조금씩 앗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를 알고 있는듯이, A선배는 나를 혼자 두지 않았습니다.
늘 같이 있었던 것 같아요.
위태위태한 나를, 늘 걱정하면서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동아리방에 가면 선배부터 찾았던 것 같습니다.
누가 선배를 좋아하냐고 오해할 만큼요.
하지만 나도 선배도, 좋아하냐는 오해를 개의치 않아했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선배가 그런 말을 했을까요.
"우리 D, 25살까지 애인 없으면 나랑 애인 할까?"
그런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우리는 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먼 훗날 결혼할 때 사회자만큼은 A선배가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선배가 무척 당황했던 게 기억나지만-
나는 꼭 선배가 해줬으면 했어요.
부산에서 만난, 내 두번째 아버지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버지라기엔 오빠에 가깝긴 하지만-
그렇게 가깝고,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멋진 왕자님이 생기셔서 바쁘신 우리 21기의 영원한 부산 아부지.
사랑을 담아, 제가 쓴 글이 하루의 기쁨이 되셨길 바라요.
언제나 그렇듯,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P.S
나는 그 때의 선배가 정말 멋있었어요.
우리보다 겨우 4살 위인데도 뭐든 해내는 게 멋있고 또 슈퍼맨 같았거든요.
오늘도 왕자님에게 슈퍼맨이 되셨을 부산 아부지, 오늘도 힘내세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