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수반 ; 밥을 말아 먹는 물밥)
나는 솥밥을 좋아한다.
몇 달 전, 써니와 희야, 지나, 그리고 빛나와 함께 갔던 솥밥집이 너무 맛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날의 밥 냄새가 잊히지 않는다.
조용하고 아늑했던 그 분위기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솥밥집은, ‘편안함’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이번 주 토요일엔, 남포동의 솥밥집에 곤죠왕자를 데리고 다시 찾았다.
메뉴판에는 왕자가 좋아할 만한 화덕고등어구이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토요일 점심은 이곳이라고, 마음이 기울었다.
부평 깡통시장에서 왕자가 좋아할 만한 간식 몇 개를 사고,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젤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걸었다.
손 끝에 달랑달랑 매달린 젤리가 즐거움이 담긴 노래처럼 흔들거렸다.
이재모 화덕피자집을 지나, 국제시장으로 들어선 곳에 소담하게 자리 잡은 솥밥집.
이름도 예쁜 ‘한다솥 남포점’은,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정갈함이 조용히 스며 있는 곳이었다.
아이와 함께 들어서니, 평일에는 뵙지 못했던 사장님이 푸근한 미소로 맞이해 주셨다.
화덕고등어구이와 소불고기 솥밥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곤죠왕자와 함께 메뉴판을 살펴보았다.
“엄마, 이게 차림표야?”
“응, 맞아.”
그렇게 대답하고 나니, 아이는 그 뒤로도 쉼 없이 질문을 이어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 안에서 열심히 이해해 보려는 듯,
하나하나 단어를 붙잡고 물었다.
열정이 귀여워 미소를 짓는 사이,
옆 테이블의 어르신들이 아이에게 “질문을 참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러자 곤죠왕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자꾸 큰 소리로 물으면, 우리 식당 밖으로 나가야 해.”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어르신들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이는 이렇게 물어보며 배우는 거예요. 괜찮아요.”
그 말에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밥 짓는 달그락거림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한 식당이었기에
아이의 목소리가 파티션을 넘어 퍼지는 게 조금 걱정됐지만,
사장님도, 알바생도 빙긋 웃으며 아이를 바라봐 주었다.
그 배려가 고마워서, 마음까지 포근해졌다.
아이가 밥을 잘 먹을 수 있도록,
뜨거운 솥밥을 모두 내 쪽으로 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솥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을 덜어 주고,
화덕고등어의 살을 조심스레 발라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남은 밥그릇에 뜨거운 물을 붓고
눌은 밥을 살살 저으며 죽처럼 만들고 있을 때—
곤죠왕자가 환하게 외쳤다.
“와! 그렇게 먹으면 수반인데!”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수반이 뭐야?”
“왕이 먹는 밥상이지!”
아이의 대답에 주변 어른들이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식탁 위엔 밥 냄새보다 따뜻한 웃음이 먼저 퍼졌다.
나는 그때, 아이가 ‘수반’이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시간 뒤, 쿠오리노 카페에서 수플레 케이크를 먹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 곤죠 왕자, 수반이 뭔지 알아?”
“응.”
“그런데 우리가 먹은 건 ‘숭늉’이라고 해.”
“아니야. 수반은 왕도 먹는 거야.”
나는 웃으며 물었다.
“응? 그걸 곤죠왕자는 어떻게 알아?”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수반은 물에 말아 먹는 밥이야. 물밥. 오늘도 솥밥에 물을 부어서 먹었잖아. 그러니까 그건 수반이 맞아.”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아이의 세계에선 밥 한 그릇도, 물 한 모금도
모두 왕의 식탁이 되는 법이었다.
언어는 그렇게 자란다.
오늘도 나는, 그 작고 단단한 세계에 초대받는다.
수반, 나는 물로 만든 거울이라는 뜻으로 알았던 그 단어를-
따뜻한 물에 부어 먹는 밥, 수반이라는 뜻으로 초대받았다.
나는 그날, 한 그릇의 밥에서 언어가 자라는 순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