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같은 가을

(feat. 남자 동기들이 떠나고 난 뒤의 가을 학기)

by Rachel

가을 학기를 마무리하고, 봄 같은 겨울바람이 불어오던 그 무렵—
나는 이상하게 허전해졌다.


우리 동기들 중 군대를 미루는 남자 동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합숙을 치르고 남은 인원은 여자 셋, 남자 일곱.

선배들은 그 숫자를 보며
“너희 기수는 유난히 많네. 아마 더 남지 않겠나?”
하곤 했지만, 결국 일곱 명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입대를 준비했다.

그래서였을까.
가을 학기가 끝날 무렵, 선배들은 종종 말했다.

“이제 곧 너희도 2학년이다. 다음 학기는 없다 생각하고 잘 버텨라.”

그 말은 농담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들리던 계절이었다.


그 즈음, 나는 미르치과기에서 상을 받았고
그 뒤에도 그대로 내달리듯 바쁜 하루들을 살았다.


하지만 2학기가 되자, 선배들이 우리에게 요구한 건
조금 더 혹독한 훈련이었다.

“걱정된다”며 실력을 끌어올리라고 시키던 보강 운동들.
나는 그저 시키니까 하는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애정 어린 훈련이었다는 건, 아주 나중에야 깨달았다.



선배들 눈에는 내가 꽤나 위태위태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걸,
왜 그리도 뒤늦게 알았을까.

특히 17기 선배들은 나를 많이 걱정했다.
멘탈도 여리고, 몸도 유난히 약했던 나였으니
다음 회장 임기까지 제대로 버틸 수 있을지
속으로 얼마나 고민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걱정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선배들 사이에서 “얘 좀 잘 부탁한다”고
내 이름을 조용히 건네고 다녔다는 걸,

나는 17기 선배들의 졸업식 날에서야 알았다.

그 날, 나는 눈물을 한 바가지나 쏟아냈다.
그 배려가 고마워서,
그리고 그 배려가—
사실은 나에게 제대로 닿지 못했다는 걸 깨달아서.




미르치과기 상을 받고 난 뒤,
나는 한동안 훈련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다리 부상 때문에 학기의 반 이상을 깁스를 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시기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다.
훈련장에 나가 참관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찾으려 애썼다.

다만 그 마음과 별개로—
동기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했던 그 시도가
혹시 되려 짐이 되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그 계절의 바람처럼
늦게야 내게 스며들었다.



가을.
떨어지는 잎새들은 허무하게 지고,
나무에 마지막으로 매달린 열매들만이 남아 있던 계절.

나는 그 열매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년도 잘 지낼 수 있을까.

허전해진 마음 속은 어떻게 채워질까.

그 해 가을, 나는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그리고 신입생 중 대출 기록이 1,000권이 넘는 학생에게 주는 독서왕 상품을 받았다.

그것도, 그 계절을 버티기 위한 나만의 작은 방식이었을 것이다.


동기들이 하나둘 사라지자,
버티기에는 마음이 너무 쉽게 허물어지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내 형제 같았던 동기들이 떠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가슴 아팠다.

그 해 가을에 흘린 눈물은—
아마도 입대하는 동기들을 배웅하며 흘린 눈물이
제일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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